美 발빼자 테러 신음… 아프간, 다시 ‘글로벌 시한폭탄’ 우려[글로벌 포커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입력 2021-05-15 03:00수정 2021-05-1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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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에 빠진 ‘제국의 무덤’
20년 만에 철수하는 미군… 잇단 테러-교전에 희생자 속출
탈레반, 재장악은 시간문제… 제2의 이라크 되나
3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정부 보안요원들이 부착형 폭탄에 의한 테러 공격을 받아 훼손된 차량을 확인하고 있다. 이 차에 탑승했던 중앙정부 공무원 중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아프간 정부는 이슬람 무장반군 탈레반을 테러 배후로 지목했지만 탈레반 측은 부인했다. 카불=AP 뉴시스
1일부터 미군의 철수가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에서 8∼10일 3일 연속 테러가 발생했다. 11일에는 수니파 무장반군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서 서쪽으로 불과 약 40km 떨어진 네르크를 점령하는 등 정국 불안이 격화하고 있다. 탈레반이 카불까지 점령하고 전 국토를 장악하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나온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밀려난 이슬람국가(IS) 역시 아프간에서 부쩍 세를 키우고 있다.

미국이 9·11테러 한 달 만인 2001년 10월 아프간 전쟁을 개시한 이유는 테러 주범 오사마 빈라덴을 비호하는 탈레반에 대한 보복 차원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아프간에 진입했던 미군이 철수하자 아프간이 다시 전 세계 테러의 온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이 ‘제국의 무덤(graveyard of empires)’으로 불리는 아프간에서 발을 빼려다 중국의 영향력만 키워주는 등 더 큰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군 떠나기도 전에 테러 빗발
8일 카불의 한 고등학교 인근에서 차량이 폭발해 최소 85명이 숨지고 147명이 다쳤다. 9일 남부 샤레사파에서도 버스 테러로 11명이 숨지고 28명이 부상을 입었다. 10일 중부 풀레마타크에서도 폭탄이 터져 2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아프간 전역에서 테러가 빗발치고 있지만 중앙정부는 카불을 포함한 일부 지역만 장악하고 있는 터라 사태 수습조차 못하고 있다.

탈레반은 부인하지만 현지에서는 세 테러 모두 탈레반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1996∼2001년 집권했던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우며 여성 교육 및 취업을 금지 하는 등 여성 인권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8일 테러의 희생자 대부분은 하교 중이던 여고생이었다. 테러가 이들의 하교 시간을 노려 발생했다는 점이 여성 교육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탈레반과의 연관성을 높인다. 9, 10일 테러는 길에 설치된 폭발물이 터져 발생했다. 탈레반이 미군과 중앙정부에 협조하는 민간인을 제거할 때 자주 쓰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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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9·11테러 20주년인 올해 9월 11일까지 아프간에 있는 2500명의 미군과 7500명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군을 완전히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탈레반은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행정부와 맺은 ‘올해 5월 1일까지 완전 철군’ 약속이 넉 달 미뤄졌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탈레반은 지난달 26일 동부 쿠나르의 정부군을 향한 로켓포 공격, 같은 달 30일 동부 로가르의 차량 폭탄테러, 이달 3일 남부 라슈카르가에 대한 공격 등을 잇달아 저질렀다.

유엔에 따르면 2020년에만 탈레반과 정부군 교전으로 민간인 3035명이 숨지고 5785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와중에도 탈레반의 테러로 1만 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한 셈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피해자까지 감안하면 실제 사상자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여성 탄압·테러·마약 활개 불 보듯 뻔해
국제사회가 탈레반의 영향력 강화를 우려하는 이유는 탈레반이 1996∼2001년 집권기에 현대 문명국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성 및 소수민족 탄압, 문화재 파괴 등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테러와 마약 문제도 기승을 부렸다.

당시 탈레반은 8세 이상 여성의 교육과 취업을 금지했다. 공공장소에서의 부르카(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이슬람 전통 복장) 착용을 강제했다. 여성의 의료시설 이용조차 제한했다. 남성이 동행하지 않으면 여성 혼자 밖으로 나가거나 음악 감상조차 할 수 없었다. 외출이 여성의 도덕적 타락을 부추기고 음악 감상 또한 부도덕의 상징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특정 여성의 아버지, 남편, 오빠 등이 그를 살해하는 ‘명예 살인’ 또한 처벌하지 않았다. 매매혼도 판을 쳤다.

이란계 백인 파슈툰족이 대부분인 탈레반은 몽골계 혈통이 섞였으며 시아파인 하자라족을 거세게 탄압했다. 1998년에만 공식적으로 7000명이 넘는 하자라족을 학살했다. 2001년 3월에는 우상 숭배라는 이유로 6세기에 만들어진 세계적 문화유산 ‘바미안 석불’을 공개 폭파해 전 세계적 지탄을 받았다. 통치자금 확보를 위해 마약 재배 등도 서슴지 않았다.

탈레반은 아프간 최대 언어인 파슈토어로 ‘학생’이란 단어에서 유래했다.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신학자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1960∼2013)가 1994년 창설했다. 그는 1989년 소련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후 각 군벌끼리 치열한 내전을 벌이자 이슬람 전통 교육기관 ‘마드라사’ 소속 신학생 2만5000명을 주축으로 군사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미국 또한 소련에 협력했던 일부 군벌을 소탕하기 위해 탈레반을 배후에서 지원했다.

오랜 내전에 신음하던 국민들은 “이슬람 사상을 통해 세상을 정화하겠다”는 탈레반에 속속 동참했다. 창설 2년 만인 1996년 카불을 장악하며 집권세력이 됐다. 2001년 미국이 아프간 전쟁을 시작하자 카불을 내주고 남부 칸다하르 등으로 밀려났지만 호시탐탐 재집권을 노려왔다. 지난 20년간 미국이 이라크 전쟁, IS 격퇴 등으로 아프간에만 집중할 수 없었던 것도 탈레반의 활동 여지를 넓혔다.

여성, 소수민족, 중앙정부와 미군에 협력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탈레반 집권 가능성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 서부 헤라트대에 재학 중인 여대생 바시레 헤이다리 씨는 최근 가디언 인터뷰에서 “내 소원은 학업을 마치고 일하는 것인데 탈레반이 집권하면 취업은커녕 외출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미군, 중앙정부에 협력했던 아프간인 일부가 이미 아프간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엑소더스(대탈출)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빈국·종족 갈등 등도 문제
다민족 다언어 다종교 국가인 아프간의 고질적 내부 갈등 또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약 3900만 명 인구 중 42%는 탈레반의 세력 기반인 파슈툰족이다. 이들은 주로 칸다하르, 파키스탄 접경지 등 남서부에 거주한다. 타지크족(27%), 우즈베크족(9%) 등은 카불 등 북부가 기반이며 아슈라프 가니 정권이 이끄는 중앙정부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현재 중앙정부 내 파슈툰족 비중이 5% 미만이라는 통계도 있다.

인구의 9%를 차지하는 시아파 하자라족은 수니파 무슬림 비중이 90%가 넘는 아프간에서 가장 박해받는 집단이다. 탈레반과 IS는 모두 하자라족을 상대로 한 테러를 서슴지 않는다. 여고생이 대거 희생된 8일 테러 역시 하자라족 집단 거주지인 카불 서부에서 발생했다.

하자라 종교 지도자인 카짐 에사니는 9일 테러 희생자의 장례식장에서 “우리가 거리, 병원, 이슬람 사원에서 폭탄을 맞아 죽어나가는데도 경찰들이 방관한다”며 중앙정부, 탈레반, IS 모두 한통속으로 하자라족을 박해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IS는 탈레반이 시아파 처단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불만까지 제기하고 있다. 8일 테러 직후 가니 대통령이 “탈레반 소행”이라고 지목했음에도 탈레반 측이 “IS가 저질렀다”고 반박한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세계 최빈국 수준의 경제난, 현대 중앙집권 체제가 작동한 적이 거의 없는 역사 등도 정국 불안을 부추긴다. 국토의 약 75%는 파미르, 힌두쿠시, 쿤룬 등 험준한 산악지대다. 자연지형 자체가 철도, 도로 등 인프라 건설에 불리하다 보니 부족장 중심의 통치 체제가 고착화했다. 지상군 병력에 의존하는 탈레반이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미군에 20년간 맞설 수 있었던 것 또한 자연지형의 덕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탈레반이 최신식 드론과 레이저 무기 등으로도 찾아내기 어려운 산악지대에 은신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2019년 세계은행 기준으로 아프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02달러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189개국 중 184위였다. 2002년 상원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아프간을 찾았던 바이든 미 대통령은 열악한 현실에 깜짝 놀랐다. 당시 미 대사관 내부에도 수세식 변기가 없고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다. 동행했던 토머스 프리드먼 NYT 칼럼니스트 역시 “차라리 달에 국가를 건설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제국의 수렁, 제2의 이라크 되나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가 교차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있는 아프간은 오래전부터 강대국의 무덤으로 불렸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했던 대영제국은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했다. 러시아의 영향력은 차단했지만 끈질긴 아프간군의 저항에 부딪혀 1919년 독립을 허용했다.

1979년 침공을 단행한 소련 역시 1989년 철군했다. 10년간 당시로는 천문학적 금액인 840억 달러를 투입했고 군인 1만5000명이 숨졌지만 아프간을 장악하지 못해 소련 붕괴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20년간 2조2610억 달러(약 2531조 원)를 쓰고 미군 2442명이 희생됐지만 탈레반을 소탕하지 못했다.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 수렁에 빠져 있는 동안 중국은 미국을 위협하는 패권국으로 성장했다. 군사력 또한 대폭 증강해 인도태평양에서 미국과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 미국이 떠나면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호시탐탐 접경지대에 군사기지 건설을 노리는 중국이 아프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미국 내에서조차 철군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야당 공화당, 국방부 등에서는 이번 철군이 2011년 이라크 철수를 발표했다 IS 창궐 여파로 3년 만에 이라크 재개입을 선언한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실수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격이라고 비판한다. ‘공화당 1인자’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아프간 철수는 오바마 정부의 이라크 철수만큼 위험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달 철군 발표 직후에도 “심각한 실수”라고 거듭 우려했다.

NYT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가 철군 결정을 발표할 때조차 국방부는 거세게 반대했다. 일부 관계자는 “아프간이 미국을 공격하는 테러 집단의 피난처가 되면 그 책임은 오롯이 대통령이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미군 철수가 아프간을 ‘테러 인큐베이터’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다.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인권 문제가 불거지면 인권을 기치로 내건 바이든 행정부에도 금이 간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는 “미국이 아프간에서 발을 빼지도 관여하지도 못하는 상황은 이라크와 매우 흡사하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아프간의 고질적 내부 혼란은 물론이고 중국, 이란, 인도, 파키스탄 등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미국 주도의 다자협력체를 작동하기도 어렵다”며 당분간 아프간의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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