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들고 의사당 휘저은 큐어논…“악마숭배자가 美지배” 신봉[글로벌 포커스]

조종엽기자 , 신아형기자 , 김민 기자 입력 2021-01-16 03:00수정 2021-01-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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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탄핵’ 부른 의회 난입 극우주의자들 정체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가 주도한 전대미문의 미 의회 난입 사태의 후폭풍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난입을 사실상 종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하원이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13일 ‘미 최초로 4년 임기 중 두 번이나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된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20일 출범할 조 바이든 신임 행정부와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퇴임 후에도 탄핵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상원에서 탄핵이 최종 통과되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형사 기소를 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의회 난입을 주도한 미 극우주의자에 대한 관심 역시 커지고 있다. 이들은 누구이며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 “소아성애자가 美지배” 주장하는 큐어논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언론은 수천 명으로 추정되는 이번 시위대에 큐어논, 프라우드보이스 등 미 주요 극우단체 회원이 상당수 포함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얼굴에 성조기 색깔을 칠하고 소뿔 모자를 쓴 후 의회 난입을 주도해 구속된 제이컵 챈슬리(33) 등이 소속된 큐어논에 대한 관심이 높다.

2017년 극우 온라인 게시판 ‘포챈(4chan)’에서 탄생한 큐어논은 불과 4년 만에 미국을 대표하는 극우단체가 됐다. 익명 극우주의자 ‘큐’란 인물이 정부 내부 인사를 자처하며 각종 음모론이 담긴 글을 올렸고 이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세를 불렸다. 큐어논은 ‘큐’와 익명을 뜻하는 ‘Anonymous(어노니머스)’의 합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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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미 민주당과 연결된 비밀집단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미국을 사실상 통치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구하기 위해 이들과 맞서 싸운다는 음모론을 신봉한다. 또 딥스테이트에 소속된 인물이 악마 숭배자이자 소아성애자라고 주장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억만장자 빌 게이츠와 조지 소로스 등이 대표적 인물이며 조 바이든 당선인은 딥스테이트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펼친다.

큐어논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백인 저소득 남성에게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선과 같은 날 치러진 상하원 선거 때도 큐어논의 위력이 입증됐다. 남부 조지아주 하원 선거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한 마저리 테일러 그린 후보는 “큐어논을 지지한다”고 거듭 언급했음에도 당선됐다. 블룸버그뉴스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 일본, 브라질 등에도 큐어논 지지자가 많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종종 트위터에 큐어논 관련 게시물을 공유하거나 언급하면서 음모론이 확산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프라우드보이스·NSC-131 등도 유명
미 극우 음모론단체 큐어논의 핵심 회원인 제이컵 챈슬리가 6일 상의를 탈의한 채 소뿔 모자를 쓰고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고함을 지르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2016년 만들어진 백인 우월주의단체 ‘프라우드보이스’ 회원도 조직적으로 의회 난입에 가담했다. 이민, 인종 통합 정책, 낙태 합법화 등이 백인을 멸종시키려는 목적으로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반(反)이민, 반페미니즘 등을 표방하며 종종 폭력 시위에 가담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미국을 뒤흔든 인종차별 항의 시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s)’ 당시 일종의 ‘맞불’ 시위를 벌였다. 또 흑인을 ‘블랙 아메리칸(Black American)’이 아니라 ‘아프리칸 아메리칸(African American)’으로 부르도록 하는 등 인종, 성, 민족, 종교 등을 규정할 수 있는 특정 표현을 쓰지 말자는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 운동에도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이것이 개인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트위터를 통해 이들의 행보를 두둔했다.

2019년 신(新)나치주의를 표방하며 설립된 ‘NSC-131’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NSC는 ‘민족주의자 클럽(Nationalist Social Club)’의 약자다. 131은 ‘반공산주의 행동(Anti-Communist Action)에서 유래했다. 세 단어의 머리글자인 A, C, A가 영어 알파벳에서 첫 번째와 세 번째 단어라는 점에 착안해 해당 숫자를 부여했다.

의회 난입 당시 이 단체 소속의 한 남성은 나치가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이름을 딴 ‘캠프 아우슈비츠’란 글이 쓰인 상의를 입고 등장했다. 이들 또한 “유대인이 백인을 말살시키려 한다”고 주장한다.

NYT에 따르면 2019년 미국의 반유대인 범죄는 최근 40년 중 가장 많았다. 지난해 12월에도 뉴욕 스태튼아일랜드의 자치구청장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가 공개 장소에서 나치 경례 구호인 ‘하일 히틀러’라고 외치는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큰 비판을 받았다.

미국을 지키는 민병대를 자처하는 ‘스리퍼센터스(3%ers)’도 이번 집회에 등장했다. 2008년 설립된 후 2017년 중부 오클라호마주에서 은행 폭탄 테러를 벌여 주목을 받았다. 전직 경찰, 군인 등이 소속된 ‘오스키퍼스(Oath Keepers)’ 또한 “새로운 세계 질서가 미국인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가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단체의 공통점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맹렬한 지지,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확고한 믿음이라고 NYT는 진단했다.

일부 사회학자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강경 기독교 복음주의가 트럼프식 극단주의와 결합하면서 미국의 극우세력이 난립할 토양이 마련됐다고 분석한다. NYT에 따르면 의회 난입 당시 시위대가 사용한 도구에는 종교적 색채가 뚜렷했다. ‘예수(Jesus) 2020’ ‘신의 갑옷’ 문구가 등장했고 십자가를 든 사람도 상당수였다. NYT는 “정치적 불만과 왜곡된 종교적 열정이 뒤섞인 일부 트럼프 지지자가 스스로를 ‘성전(聖戰)’ 참여자라고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 극우 미디어도 난립
이들 극우세력이 빠른 시간 내에 세를 불린 또 다른 배경에 극우 미디어가 있다. 전직 기자 크리스토퍼 러디가 1998년 창립한 뉴스맥스, 사업가 로버트 헤링이 2013년 만든 ‘OANN(One America News Network)’ 등이 대표적 극우 방송으로 꼽힌다. 하버드대 니먼언론재단은 5일 보고서에서 “온라인에서만 돌아다니던 ‘이상한’ 게시물들이 이제는 고품질로 제작돼 비용이 많이 드는 매체로 유통되면서 수용자들이 정보를 신뢰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했다.

뉴스맥스와 OANN은 가짜뉴스를 여과 없이 내보낸다는 비판을 받는다. OANN은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가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허위 정보를 보도했다. 지난해 6월에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 도중 경찰에 밀려 넘어져 중상을 입은 뉴욕주의 노인이 폭력적 테러그룹과 관계가 있다는 근거 없는 뉴스도 전했다. 특히 이들이 가짜뉴스를 보도한 시점은 각각 트럼프 대통령이 클린턴 후보와 뉴욕주 노인을 비판하는 트위터를 올린 직후였다. 누가 봐도 고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매체는 대표적 친트럼프 언론으로 알려졌던 폭스뉴스에서 떨어져 나온 시청자들을 흡수하며 최근 급속히 영향력을 확장했다. “폭스뉴스조차 트럼프에게 등을 돌렸다”는 이유에서다. 알려진 대로 폭스뉴스는 지난해 11월 대선 당시 미 언론 중 가장 먼저 보수 텃밭인 서부 애리조나주에서 바이든 당선인이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모바일 앱 분석 업체인 앱토피아에 따르면 뉴스맥스의 하루 모바일 시청자 수는 지난해 10월 20일 15만여 명에서 대선 이후인 같은 해 11월 24일 225만 명으로 치솟았다. 뉴스맥스 또한 그레그 켈리, 롭 슈밋 등 폭스뉴스의 전 진행자들을 간판 앵커로 영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트위터에 두 매체의 보도를 언급하며 힘을 실어줬다. USA투데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9월∼2020년 8월 케이블 방송과 관련해 올린 트윗 1206개 중 95%에서 폭스뉴스를 언급했지만 이 비율은 대선 이후인 11월 15일∼12월 2일 53%로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그 대신 OANN(37%)과 뉴스맥스(10%)에 대한 언급이 급증했다.

○ ‘극우파의 퍼스트레이디’ 리베카 머서
극우세력의 후원자에도 많은 관심이 쏠린다. 월가를 대표하는 유명 헤지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공동 창업자 로버트 머서(75)의 딸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고액 후원자로 유명한 리베카 머서(48)가 대표적이다. 리베카는 극우주의자가 즐겨 쓰는 소셜미디어 ‘팔러’를 설립하는 데 자금을 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베카는 지난해 11월 팔러에 게시한 글에서 자신이 여러 공동 설립자와 함께 팔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명문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월가에서 일한 리베카는 2016년 대선 당시 유명해졌다. 당시 그는 부친과 함께 트럼프 대선캠프에 2500만 달러(약 270억 원)를 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행정부 인사에도 관여했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리베카를 “공화당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라고 평했다. 뉴스맥스의 창립자 러디는 “극우파의 퍼스트레이디”라고 표현했다.

머서 가문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페이스북에서 수집된 5000만 명의 개인정보를 트럼프 캠프에 무단 제공했다가 논란이 된 데이터 분석회사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도 로버트 머서가 일부 소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로버트는 ‘퀀트 투자’(수학 및 통계 기법 활용 투자)로 유명한 헤지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를 경영하며 부를 축적했고, 2004년 ‘머서 재단’을 세워 우파 정치세력 지원에 본격 나서면서 딸 리베카를 재단의 얼굴로 내세웠다. 리베카는 2012년 대선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패하자 기존 정치 전문가를 믿을 수 없다고 보고 정치 전면에 나섰다고 알려져 있다.

큐어논 음모론을 신봉하는 흑인 여성 방송인 겸 작가 앤절라 스탠턴킹(44), 인터넷 평론가 등으로 활동하는 앤팀 지오넷(34) 등도 극우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꼽힌다.

○ 바이든 행정부 또한 극우주의자 대처 두고 부담

이처럼 자금력, 조직력, 미디어 등을 갖춘 극우단체가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에도 미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미국은 인종차별 문제와 정치·경제적 양극화 등으로 갈기갈기 찢긴 상태이고, 이 문제들에 대한 트럼프식 극단주의는 트럼프가 퇴임해도 여전히 힘을 발휘할 것”이라며 “특히 정권 교체기 극우 세력의 반발과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박 교수는 “새 정부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면 극우세력도 소수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미국 극우세력은 이념에 바탕을 뒀다기보다 감성적 증오를 동력으로 하고 있다”면서 “타오르는 증오를 하룻밤 사이에 없앨 수는 없기에 바이든 당선인에게도 장애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화당에도 극우세력은 ‘독이 든 술잔’과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손을 잡으면 민주당을 견제하는 동력이 되겠지만 트럼프 탄핵 사태의 추이에 따라 극우세력의 반발이 커지면 나중에는 공화당 분당의 불씨가 될 소지마저 있다는 의미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면서도 그의 추종세력은 흡수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면서 “극우세력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바이든 행정부뿐 아니라 공화당의 미래도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조종엽 jjj@donga.com·신아형·김민 기자
#트럼프 탄핵#큐어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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