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별도 시나리오도 검토”… 점점 불투명해지는 7월 개막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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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속 도쿄 올림픽 어떻게 되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올해 1월 20일 정기국회 시정연설을 ‘올림픽’ 이야기로 시작했다. 1964년 10월 10일 도쿄 올림픽 개회식에서 마지막 성화 주자였던 사카이 요시노리(坂井義則) 사례를 들며 “원자폭탄이 투하된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19세의 젊은이가 달리는 모습은 일본이 폭탄 투하의 아픔을 극복하고 자부심을 회복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당시 ‘올림픽’이라는 단어를 11번이나 사용했다. 총리의 시정연설은 한 해 일본 정부의 정책 추진 방향을 보여준다. 아베 총리가 올 한 해 도쿄 올림픽을 가장 중요한 이슈로 여긴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 때문에 7월 24일로 예정된 2020 도쿄 올림픽 개회식이 그대로 열릴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국제 여론은 악화되고 있다. 대회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 내부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발언록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9일(현지 시간)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에서 ‘최근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화상회의에서 도쿄 올림픽 연기나 취소 가능성을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논의했다(We did discuss it)”고 답했다. 이어 “그것은 그(아베 총리)에게 큰 결정이다. 그의 결정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의 결정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앞서 16일 G7 정상들과 화상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완전한 형태로 실현하는 것에 대해 지지를 얻었다”고만 말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19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도쿄 올림픽과 관련해 “아직 4개월 반이 남았기 때문에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지만, 물론 우리는 (7월 24일 정상적으로 개최하는 것과 다른) 별도 시나리오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흐 위원장이 통상과 다른 개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취소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의제로 상정하지 않고 있다”며 부정했다.

정상 개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도쿄 올림픽은 어떻게 될까. 크게 보아 네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 강행… 원하지만 점점 불투명

日 도착한 올림픽 성화 그리스에서 채화된 도쿄 올림픽 성화가 20일 일본 히가시마쓰시마의 항공자위대 
마쓰시마 기지에 도착했다. 각각 올림픽 3연패를 이룬 노무라 다다히로(오른쪽·유도)와 요시다 사오리(레슬링)가 모리 요시로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화를 옮기고 있다. 성화 도착 행사는 올림픽 붐업의 주요 이벤트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어린이 200여 명의 참석을 취소하는 등 대폭 축소됐다. 강풍까지 불어 항공자위대 곡예비행단이 공중에 그리려던 오륜기 모양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히가시마쓰시마=AP 뉴시스
日 도착한 올림픽 성화 그리스에서 채화된 도쿄 올림픽 성화가 20일 일본 히가시마쓰시마의 항공자위대 마쓰시마 기지에 도착했다. 각각 올림픽 3연패를 이룬 노무라 다다히로(오른쪽·유도)와 요시다 사오리(레슬링)가 모리 요시로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화를 옮기고 있다. 성화 도착 행사는 올림픽 붐업의 주요 이벤트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어린이 200여 명의 참석을 취소하는 등 대폭 축소됐다. 강풍까지 불어 항공자위대 곡예비행단이 공중에 그리려던 오륜기 모양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히가시마쓰시마=AP 뉴시스
IOC와 일본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관건은 코로나19 사태가 얼마나 빨리 진정되느냐다. 관중과 선수가 같은 장소에 밀집된 채 치르는 올림픽은 질병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IOC는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의 신종인플루엔자,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의 지카바이러스 위협에 대처한 경험이 있다. IOC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19로 올림픽 예선전이 일제히 늦춰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IOC는 대회 한 달 전인 6월까지 예선전을 끝내면 대회를 치르는 데 지장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더 지속되면 6월까지 예선을 치를 수 있는 물리적 시간조차 부족해진다. 또 코로나19가 다소 가라앉는다고 하더라도 방역대책은 어떻게 되는지, 선수들과 관중의 안전은 어떻게 확보할지 등이 불투명하다. 코로나19가 완전히 퇴치됐다고 선언되기 전에 올림픽을 열 경우 선수들과 관중의 반발로 대회를 정상적으로 치르기는 힘들다.

○ 취소… 경제적, 정치적 충격파

IOC는 참가자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요소가 있을 경우 취소를 통보할 수 있다. 통보 후 60일 이내에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취소한다. 그러나 취소 결정은 막대한 피해를 봐야 할 일본과 협의를 할 수밖에 없다.

취소될 경우 일본은 경제적 직격탄을 맞는다. 마이니치신문은 18일 “최악의 시나리오는 취소”라며 “3조 엔(약 34조8000억 원)이 넘는 올림픽 비용을 투입하는 일본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회계감사원에 따르면 올림픽 지출비용은 △정부 1조600억 엔 △도쿄도 1조4100억 엔 △대회조직위원회 6000억 엔으로 총 3조700억 엔이다. 2013년 올림픽 유치 당시 총경비를 7300억 엔으로 예상했는데 4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올림픽 관련 ‘미래의 수입’도 사라진다. 다이이치세이메이경제연구소는 16일 외국인 여행객 특수 등 3조2000억 엔(약 37조 원) 정도의 경제 파급효과가 사라질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 도쿄 시내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이 2020 도쿄 올림픽 홍보문구 앞을 지나고 있다.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7월 도쿄 올림픽이 예정대로 열릴지는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도쿄=AP 뉴시스
일본 도쿄 시내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이 2020 도쿄 올림픽 홍보문구 앞을 지나고 있다.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7월 도쿄 올림픽이 예정대로 열릴지는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도쿄=AP 뉴시스
일본의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SMBC닛코증권은 올림픽 취소로 인해 국내총생산(GDP)이 약 7조8000억 엔(약 90조 원) 줄어 경제성장률이 약 1.4%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정치적 충격파도 크다. 자민당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 총무회장은 3일 기자회견에서 “만에 하나 올림픽이 연기되면 정치적 책임에 대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도쿄 올림픽을 ‘부흥 올림픽’으로 규정하며 총력을 기울여왔는데 무산되면 아베 총리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AP통신도 “도쿄 올림픽이 무산되면 최대 피해자는 아베 총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BBC에 따르면 IOC는 올림픽 취소에 대비해 2000만 파운드(약 290억 원)의 보험을 들었다. 취소되면 8억 파운드(약 1조1600억 원)를 돌려받는다고 한다. 대회 취소 때 일본은 IOC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IOC에는 미래의 피해가 더 막심하다. 갈수록 올림픽 개최 희망 도시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올림픽 취소 사례는 다른 개최 희망 도시들에 악영향을 준다. 뜻하지 않게 대회가 취소되는 상황이 닥칠 수 있으며, 천문학적 준비 비용을 고스란히 날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도쿄 올림픽 중계권료로 1조3000억 원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NBC 방송사를 비롯해 각종 스폰서들이 입는 피해도 고려해야 한다. ○연기… 첩첩산중 넘어야 할 산

취소가 어렵다면 1, 2년 연기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본은 ‘개최도시협약서’에 따라 올해 안으로만 연기하면 IOC와의 계약은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한때 올해 10월 연기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여건상 힘들다. 미국프로야구와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및 유럽 프로축구 등의 주요 프로스포츠가 가을에 한창 시즌을 치른다. 10월로 연기하면 이 종목들과 이해관계가 부딪친다. 이 종목들도 중계해야 하는 NBC 및 방송사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밖에 이미 확정된 수많은 국제 스포츠 행사들의 일정을 일제히 재조정해야 한다. BBC는 “사실상 (올 하반기 연기는) 불가능하다”고 표현했다.

이 때문에 1, 2년 연기론이 나오고 있다. IOC와 조직위 모두 취소를 최악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새로 연기협약을 맺을 수 있다. 연기할 경우에는 1년 연기가 유력하다. 2년 뒤 2022년에는 카타르 월드컵과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열리기 때문이다. 2년 이상 연기될 경우에는 추가적인 비용 부담도 견디기 힘들다.

연기할 때도 일본은 막대한 손실을 본다. 티켓 환불 사태에 올림픽 관련 직원들의 근무 연장으로 인건비도 증가한다. 민간 아파트로 전환될 올림픽 선수촌도 비용 문제가 발생한다. 도쿄 주오구의 선수촌은 올림픽이 끝난 뒤 개·보수를 해 약 5600채의 아파트로 바뀐다. 2023년 3월부터 입주할 예정인데, 이미 분양 계약을 끝낸 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회가 연기되면 일반인에게 양도되는 시점도 늦어질 가능성이 커 보상금 문제가 불거진다. 경기장과 시설을 확보하고 날짜를 조율하는 데도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안 그래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올림픽 경비가 3조700억 엔에서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연기할 경우 추가 비용 부담이 커지긴 하지만 당초 목표로 했던 올림픽의 정치적 효과 등의 불씨는 살릴 수 있다.

○ 무관중 경기… 선수 감염 우려는 여전

무관중 경기를 치르면 조직위는 티켓 수입 약 900억 원을 포기해야 한다. 관중 없는 경기는 대회의 열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올림픽 관광객도 대거 줄어들기 때문에 관광산업도 타격을 입는다. IOC 역시 무관중 경기는 배제하는 분위기다. “전 세계인이 스포츠를 통해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를 만든다”는 올림픽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수들의 안전 문제는 여전히 제기된다. 몸을 부딪치거나 같은 공간에 모여 격렬한 호흡 속에 경기를 치러야 하는 선수들의 감염 가능성은 크다.

어느 경우에도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지만 강행 및 취소, 무관중 경기가 어렵다면 그나마 연기가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19가 조만간 진정되지 않는다면 연기론이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정상 개최를 할 수 없으면 연기한다’로 방향을 잡고, 명분 쌓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집권 자민당의 한 의원은 “취소로 기울지 않도록 지금부터 연기론을 말하기 시작한 것 같다. 5월에도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으면 ‘완전한 형태로 실시하겠다’고 연기의 이유를 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18일 보도했다. 자민당의 한 중견 의원은 도쿄신문에 “국제사회의 요청을 받아 연기하는 형태로 하면 정부로서는 체면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원홍 전문기자 bluesky@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코로나19#코로나 바이러스#일본#2020 도쿄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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