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유럽서 돈 벌었으니 세금 내야” “美기업에 과세땐 관세 보복”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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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의 무역분쟁 화두, IT기업 디지털세는 뭔가


“미국의 위협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조국과 유럽의 이익을 지키겠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면전에서 외친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날 와인, 치즈, 화장품 등 24억 달러(약 2조8440억 원) 규모의 프랑스산 수입품에 최대 100%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발표하자 울분을 터뜨린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강하게 반박했다. “당신들은 미국 기업들에 과세를 한다. 내가 그 업체들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세금을 매겨야 하는 건 미국이다. 다른 이들이 세금을 매겨선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미국 업체들이란 구글 등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을 뜻한다. 프랑스가 올해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IT 기업들에 대해 세금을 매기기로 결정한 것이 두 정상 간 감정싸움을 확산시킨 배경이었다. 두 정상 간 설전 후 주요 외신들은 “‘우리는 친구’라며 치켜세우던 두 정상 간의 브로맨스가 악연으로 변했다”고 평했다.


○ 디지털세가 뭐길래


프랑스는 올해부터 연 매출 7억5000만 유로(약 9732억 원) 이상을 올리면서 자국 내에서 2500만 유로(약 324억 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거대 IT 기업을 대상으로 자국에서 벌어들인 연간 총매출의 3%를 세금으로 부과하고 있다. 일명 ‘디지털세(Digital Tax)’다. ‘구글세’ 혹은 구글을 포함해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미국 주요 IT 기업 이름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따 ‘GAFA세’라고도 불린다.

디지털세를 두고 양국 정상까지 나서 논쟁을 벌인 근원적 이유는 디지털 발전에 따른 경제 구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한 예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의 본사는 미국에 있지만 넷플릭스 지사가 없는 국가에서도 미국 혹은 다른 국가의 서비스에 가입해 돈을 지불하면 영화 등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이용자를 많이 확보해 큰 수익을 올린다고 해도 해당 국가에 별도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현행 국제 기준의 조세조약에 따르면 외국 법인은 서비스 등 사업을 진행하는 국가에 사무실 등 물리적 고정 사업장이 있어야 법인세 과세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구글 페이스북 등은 자사 서버가 설치된 국가에서만 법인세를 낸다.

디지털세는 이처럼 각국 정부들이 주로 미국에 본사를 둔 IT 기업을 대상으로 ‘돈은 우리나라에서 벌고 세금은 내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도입됐다. 이탈리아의 경우 내년부터 전 세계 연 매출 7억5000만 유로, 자국 내 연 매출 550만 유로(약 71억 원) 이상의 IT 기업에 매출액의 3%를 세금으로 거둔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4일 “미국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지만 주권 국가로서의 결정은 우리 몫”이라며 디지털세 도입 의지를 밝혔다.

영국도 내년 4월부터 글로벌 연 매출이 5억 파운드(약 7638억 원), 영국 내 연 매출이 2500만 파운드(약 382억 원) 이상인 기업에 대해 영국 내 매출의 2%를 세금으로 받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이라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마저 “거대 디지털 기업이 영국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익, 그들이 내는 세금을 들여다봐야 한다. 기업들은 더 공정한 기여를 해야 한다”며 디지털세를 강력히 지지했다.


이 밖에도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오스트리아에서도 ‘공정 과세’를 외치며 디지털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디지털세 도입을 추진하는 오스트리아의 요하네스 파슈콸리 재무부 대변인은 “내년 1월 디지털세 도입은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디지털 미디어와 전통 미디어에 동일한 수준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라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서로 처벌 위협을 통해 관계를 위태롭게 하기보다는 디지털 무역에 있어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가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EU 차원에서도 일반 기업은 이익의 23.2%를 세금으로 내는 반면 글로벌 IT 기업들은 이익의 9.5%를 낸다는 통계를 앞세워 디지털세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국정감사 때마다 구글 페이스북 관계자가 국감장에 불려와 여야 의원들로부터 “국내에서 막대한 수익을 내는데 이에 따른 법인세는 거의 내지 않는다”며 압박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구글의 경우 앱을 내려받는 구글플레이, 동영상을 보는 유튜브를 통해 한국에서만 5조 원 가까운 매출을 올린다. 그런데도 구글이 낸 법인세는 200억 원 수준(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4조 원대 매출의 네이버가 낸 법인세는 4000억 원대에 달하다 보니 형평성 문제가 나온다. 각국 정부뿐 아니라 기존 제조업체들도 “왜 IT 기업에 제대로 과세를 하지 않느냐”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구글 등에 과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재한 탓이다. 최근 유럽을 넘어 일본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에서도 디지털세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 무역 분쟁의 화두 ‘디지털세’


거대 IT 기업들의 본거지인 미국은 이 같은 흐름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디지털세를 도입하는 나라에 관세 보복을 위협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이달 2일 “프랑스의 디지털세는 소급 적용, 특정 미국 IT 기업에 벌칙을 가하려는 목적 등 일반적인 조세 원칙과 맞지 않는 차별적 조치”라며 무역 보복 절차에 착수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프랑스의 디지털세에 맞서 24억 달러 상당의 프랑스 제품에 추가 관세를 물리기 위해 의견 수렴에 나섰다. 이어 미국 내 프랑스 기업의 서비스에 대해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제한을 두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성공한 미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려 하지 말고 스스로 기술을 개발할 생각을 하는 게 낫다”며 디지털세 도입 국가들에 독설을 퍼부었다.

트럼프 정부는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터키가 추진 중인 디지털세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인 뒤 추가 보복 관세 조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강경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3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측에 ‘디지털세를 의무적으로 부과하기보다는 선택적으로 적용하자’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물밑에서 절충점을 찾는 모습도 없지 않은 셈이다.

디지털세에 대해선 미국의 반발뿐 아니라 정보 산업계의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매일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는 4차 산업혁명 환경에서 디지털세가 IT 기업들을 위축시켜 혁신에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이다.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 개발을 통한 일자리 창출도 저해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밖에 현행 디지털세가 이익 대신 매출에 세금을 매기는 점, 자국에 세금을 납부하고 서비스 국가에도 세금을 내는 이중 과세 구조라 기존 조세 원칙을 붕괴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 “디지털세 도입은 필연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세 도입은 필연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미 산업과 경제 구조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국제기구들은 디지털세로 인한 무역 분쟁과 세계 경제 악화를 막기 위해 어떻게든 각국의 불만을 최소화시킬 ‘디지털세 국제 표준’을 만들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7월 미국을 포함한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디지털 경제 구조에 맞는 과세가 필요하다는 큰 틀의 원칙이 합의됐다.

OECD는 내년까지 디지털세 권고안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통합접근법’과 ‘글로벌 최저한세(最低限稅)’ 도입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접근법은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한 개별 국가의 소비자로부터 얻은 이익이 일정 정도를 초과하면 해당 기업 소재지에서만 과세하지 말고 소비자가 있는 모든 국가에서 과세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IT 기업뿐 아니라 자동차, 휴대전화, TV 등을 생산하는 제조업 기업도 포함된다. 소비자가 있는 국가에 법인이 없더라도 인터넷, 소셜미디어, 모바일을 통해 마케팅 데이터 수집과 같은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디지털세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OECD의 논리다. 다만 1차산업이나 광업 등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지 않거나 금융업처럼 조세 회피를 할 가능성이 작은 산업은 제외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최소한의 법인세를 의미한다. IT 기업들이 해외에서 서비스를 할 때 일정 수준 이상의 세금을 무조건 납부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서비스를 할 때 해당 지역에서 서버를 운영하는 회사가 세율이 낮은 지역에 있더라도, 유럽 일대에서 얻은 수익 중 일정 비율만큼은 무조건 세금으로 내게 하는 조치다. 조세 회피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인 셈이다.

‘납세 우수기업’을 인증하는 영국 페어택스마크(Fair Tax Mark)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까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IT 기업의 탈세 규모는 1002억 달러(약 117조 원)에 달한다. 아일랜드, 룩셈부르크와 같이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에 회사를 둬 세금을 덜 내는 방식이 탈세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OECD는 통합접근법과 글로벌 최저한세에 대한 각국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1월 말 디지털세에 대한 최종 합의를 이끌어 낸다는 방침이다. 이를 토대로 연말까지 세부 내용을 담은 합의안이 마련된다. 디지털세 기준이 마련되더라도 실제 이행까지는 3년 이상이 걸린다. 그사이 미국과 EU 등의 양보나 조율이 없으면 디지털세로 인한 무역 분쟁은 계속 악화될 수 있다.

특히 통합접근법이 디지털세 국제 기준의 주요 근간이 된다면 삼성 현대차 LG 등 국내 대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해외에서 소셜미디어 서비스를 운영하는 네이버나 다음 등도 디지털세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16일부터 세제실 내에 ‘디지털세 대응 조직’을 신설해 운영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국세청,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로펌, 회계법인 등이 참여하는 민관 태스크포스(TF)도 설치해 종합적인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 디지털세(Digital Tax) ::

특정 국가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을 대상으로 자국에서 벌어들인 매출의 일정 부분을 세금으로 내도록 하는 것으로 유럽연합(EU) 국가를 중심으로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사업을 진행하는 국가에 별다른 사업장이 없어도 과세가 가능하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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