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사우디 무기판매 금지 英-佛 수출길 막혀 발동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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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영국 최대 군수업체 BAE시스템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 48대의 판매계약을 맺었다. 계약금만 약 160억 달러(약 17조9000억 원)에 달하는 ‘빅딜’이지만 현재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갑자기 독일이 사우디에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는 바람에 수출길이 막힌 것이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이 공동 개발한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어느 한 국가가 반대하면 수출이 안 되는 구조인데, 일부 부품을 제공한 독일이 수출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에 영국 정부가 “수출 제한을 완화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독일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5일 “독일이 사우디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무기 수출과 관련해 영국, 프랑스와 독일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당인 사회민주당(SPD)의 롤프 뮈트체니히 의원은 언론 기고문에서 “당분간 사우디에 대한 무기 수출 중단 조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의 맏형 독일은 사우디의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이후 사우디 왕실이 거짓 발표를 이어 온다고 보고 지난해 11월 압박 차원에서 무기 판매 금지 조치를 내렸다. 사우디는 “카슈끄지는 살해되지 않았다” “사고였다” 등으로 수차례 말을 바꿨다. 급기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사우디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의 결정에 속이 탄 국가는 영국과 프랑스였다. EU 국가들은 전투기, 수송기, 자주포 등 무기를 공동으로 개발해 수출한다. 더군다나 사우디는 국제 무기시장에서 ‘큰손’으로 불리는 나라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15∼2017년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에 이어 사우디에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했다. 2012∼2016년 영국이 수출한 무기 중 48%를 사우디에 팔았다.

이에 다급해진 제러미 헌트 영국 외교장관은 이달 초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에게 “독일의 결정이 영국뿐 아니라 EU 방위산업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기여하는 국가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헌트 장관은 특히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수출이 중단되자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부 장관도 23일 독일의 수출 제한 조치로 많은 무기 개발과 수출 프로젝트들이 답보 상태에 빠졌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독일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려면 유럽 밖으로 무기를 수출해야 한다”며 “프랑스와 독일이 기술 협력을 통해 생산한 무기를 수출할 수 없다면 그동안의 노력은 무용지물이 된다”고 말했다.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각각 전체 지분의 11%를 보유한 항공우주 방위산업체 에어버스도 군용기와 미사일 부품 등을 사우디에 판매할 수 없어 고심하고 있다. 에어버스 최고경영자(CEO) 톰 엔더스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독일의 외교 및 보안 정책은 일관성이 없다. (사우디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는) 독일을 고립시키고 프랑스와 독일의 공동방위 사업을 망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2040년까지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독일 언론들은 “정치권이 무기 수출과 관련해서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 대부분을 의식해 이런 결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우디에 무기를 수출하지 못해 피해를 본 기업들이 독일 정부에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사우디#무기판매#bae시스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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