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유명 만담가인 야나기야 산쿄 씨(가운데 서 있는 사람)가 일본 도쿄에서 외국인 대상 만담회를 마친 후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라쿠고(落語·일본 전통 만담)에서 부채는 사무라이의 칼이 되기도 하고, 젓가락이 되기도 합니다. 우동과 소바(메밀국수)를 먹는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드리지요.”
지난달 27일 일본 도쿄(東京) 다이토(臺東) 구 라쿠고협회 2층에선 외국인 대상 만담회가 열렸다. 만담가가 부채를 이용해 면을 먹는 시늉을 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자 객석에서 웃음과 박수가 쏟아졌다.
라쿠고는 전통 의상을 입은 만담가가 방석에 앉아 접이식 부채와 수건만을 사용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만담가 한 명이 얼굴 방향과 표정, 몸짓을 바꾸며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는데, 소품이 단순하고 일본어로만 진행해 외국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을 어떻게 만담으로 웃길 수 있을까.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회는 사전에 영어로 요약한 줄거리를 배포했다. 또 만담가가 초반에 라쿠고의 특징을 간단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설명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줄거리는 바꾸지 않았지만 일본어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작품을 골랐다. 협회 관계자는 “외국인 대상 만담회는 처음”이라며 “일본을 찾는 분들이 일본 전통문화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마련한 자리”라고 말했다.
일본 문화계에선 외국인에게 전통문화의 매력을 알리는 다양한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급증하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다가서기 위해 필요하다면 변신도 서슴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은 2012년 840만 명에서 지난해 2400만 명으로 3배 가까이로 늘었다. 정부는 2020년까지 ‘연간 4000만 명 유치’를 목표로 세웠다.
이날 관객은 뜨거운 고구마를 먹는 실감나는 연기에 감탄했고, 술 취한 표정에 폭소를 쏟아냈다.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온 이탈리아 대학생 엘비라 네치 씨(23)는 “라쿠고를 다룬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됐는데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라며 “언어 때문에 걱정했는데 줄거리를 알고 보니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공연이 끝나자 마지막 무대에 올랐던 유명 만담가가 객석으로 와 관객과 간단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고, 기념품도 줬다. 관람료로 500엔(약 5100원)만 낸 관객은 ‘원더풀’을 반복했다. 협회는 “관광객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이런 행사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국기(國技)인 스모도 최근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전용경기장 국기관은 지난해 12월 알파벳으로 표기된 안내판을 설치했으며 올 초 처음으로 영어 팸플릿을 제작해 배포했다.
과거 요정에서 게이샤와 손님이 즐겼던 ‘연회 게임’을 관광객용으로 변화시킨 체험 프로그램도 인기다. 도쿄의 번화가인 니혼바시(日本橋)의 상업시설에서 열리는 이벤트인데 일본 전통 가위바위보, 복권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샤미센 연주에 맞춰 게이샤의 춤을 감상하고 게이샤와 기념촬영도 한다. 그동안 격주로 열렸지만 인기가 높아 올해부터 매주 토요일에 진행한다.
일본 정부도 전통문화의 변신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민관펀드인 쿨저팬 기구는 최근 오사카(大阪)에 수백억 원을 들여 첨단 장비를 갖춘 공연시설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가부키, 일본 무용 등 전통 문화를 애니메이션 등과 결합시켜 외국인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비언어 퍼포먼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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