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강경기류에 한발 물러서 TPP 추진은 사실상 포기
아베 “EU와 경제협정 조속 추진”… 中주도 RCEP에도 적극 참여 계획
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강행하고 불균등한 자동차 무역에 대해 시정을 요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 일단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요미우리신문은 25일 “2월 초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통상 정책이 최대 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양자 무역협정을 일본 측에 제안할 것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TPP 대신 미국이 미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요구할 경우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전날 국회에서 “TPP의 전략적이고 경제적인 의의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해를 구할 것”이라고 했지만 내부적으론 TPP는 이미 끝났다는 분위기다. 이 신문은 “TPP와 비슷하게 관세를 내린다면 미국과의 양자 협정도 완전히 거부할 순 없다”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사실 일본은 미국과의 FTA 협상에 나서는 게 달갑지 않다. TPP 이상으로 국내 농산품 시장을 개방해야 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무역 불균형’을 문제 삼는 트럼프 정권이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시장 개방에는 소극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이 환율 문제를 들고나올 것이란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양자 협정 제안에 시간을 두고 대응하면서 일단 유럽연합(EU)과의 경제연계협정(EPA),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에 힘을 쏟는 방안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5일 국회에서 “EPA를 되도록 조기에 합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시에 RCEP, 한중일 FTA 등의 협상에서 질 높은 협정을 목표로 삼고 있다. 자유무역 추진에 전력을 쏟을 것”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일본은 또 트럼프 정권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대응하기 위해 통상 사령탑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현재 TPP 대책본부를 개편해 외국과의 통상협상 전반을 총괄하는 범부처 조직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과의 양자 협상, EU와의 협상 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대미 통상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언급한 자동차 분야에 공세가 집중될 것으로 보고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다. 미국의 대일 무역 적자는 700억 달러(약 82조 원)에 이르는데, 이 중 70%가량이 자동차와 관련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경기준 등 일본의 까다로운 비(非)관세장벽 때문에 미국 차가 팔리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관방 부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당장 자동차 부문만 양국이 협상을 하자는 건 안 된다”며 선을 그었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트럼프 정권에 대한 구애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도요타는 24일(현지 시간) 미국 인디애나 주 프린스턴 공장에 6억 달러(약 7000억 원)를 투자해 생산 능력을 4만 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투자로 일자리가 400개 늘어난다. 인디애나 주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직전까지 주지사를 지낸 곳이다. 도요타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경고한 직후 5년 동안 100억 달러(약 11조7000억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히는 등 새 정권 방침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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