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세금폭탄에 美 ‘벌금 역공’?… 글로벌 금융 ‘조마조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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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쟁’ 치닫는 美-유럽]도이체방크發 금융위기 오나

 “미국이 독일과 경제 전쟁을 벌이려고 한다.”

 미국 법무부가 지난달 16일 독일 도이체방크에 140억 달러(약 15조4000억 원)의 벌금을 매기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독일 의회 경제위원회 페터 람자워 의장은 3일 “미국은 자국 경제를 위해 무역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가능한 방법을 다 써 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도이체방크에 터무니없이 큰 타격을 입히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미국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지난해에는 미 환경보호청(EPA)이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눈속임했다는 이유로 폴크스바겐에 48만2000대의 디젤 차량에 리콜 명령을 내려 독일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도이체방크는 미 법무부가 2008년 보증이 제대로 안 된 위험한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안전한 것처럼 속여 대량 판매한 혐의로 벌금을 매기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규모는 20억∼30억 달러(약 2조2000억∼3조3000억 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이체방크는 2013년 모기지담보증권에 대한 미국의 문제 제기로 19억 달러(약 2조900억 원)의 벌금을 냈다.

 예상을 뛰어넘는 벌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뒤 도이체방크의 주가가 1983년 이후 처음으로 장중 10유로(약 1만2300원) 아래로 떨어지면서 독일 최대 은행이 한순간에 휘청거리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도 “과징금은 미국이 은행, 특히 유럽 은행에 세금을 매기는 전형적인 방식”이라며 “대개는 부과된 금액의 절반 근처로 벌금을 매기는 게 보통인데 이번에 도이체방크에 부과한 과징금은 지나치게 과도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독일 간 경제 전쟁이 벌어질 조짐이 뚜렷해지자 지멘스와 다임러, BASF, 뮌헨리 등 독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잇달아 “도이체방크는 오랜 전통과 밝은 미래가 있음을 확신한다”며 지지를 선언했다.

 도이체방크에 대한 미국의 과징금 폭탄은 유럽연합(EU)이 8월 애플에 불법 감면 세금 16조 원을 추징하기로 한 데 대한 보복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독일 여당인 기독민주당의 자매당인 기독사회당(CSU) 소속 유럽의원 마르쿠스 페르버는 “미 법무부가 부과한 벌금 규모와 타이밍을 볼 때 EU의 애플 추징금에 대한 미국의 보복 성격이 강하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미국 측은 씨티그룹,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미국 금융회사에 대해서도 비슷한 혐의로 거액의 벌금을 부과했다며 보복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번 ‘과징금 공격’의 타격은 무시무시하다. 유럽 은행은 그러잖아도 마이너스 금리와 인터넷은행 활성화 이후 수익 창출의 어려움과 구조조정으로 시련을 겪고 있다.

 미 법무부는 공식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어 시장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양쪽이 당초 부과액보다 훨씬 줄어든 54억 달러(약 5조9400억 원)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법무부 고위급이나 은행이사회 등 양측의 결정권자에게 보고될 만한 수준의 합의안도 마련되지 않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 보도했다. 루머에 그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도이체방크가 과징금을 줄이지 못하면 은행 도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법무부와의 협상이 지연될수록 기업 재무팀을 비롯한 다른 대형 고객들도 도이체방크에 대한 투자를 꺼릴 수 있다. 개별 고객의 수입이 급격하게 줄면 신용등급이 떨어져 더 많은 고객이 이탈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도이체방크의 경쟁사인 미국 JP모건의 제임스 다이먼 CEO는 3일 CNBC방송에 “도이체방크에는 여전히 많은 자본과 유동성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위기설을 일축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 조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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