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해도 안해도 정치적 부담… 메르켈, 도이체방크 지원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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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쟁’ 치닫는 美-유럽]
직원 10만명 獨 최대 글로벌은행… ‘독일의 상징’ 모른척하기 어려워
伊-그리스 은행 구제금융은 제동… 지원 허용 땐 내년 총선 악영향

 도이체방크의 위기로 가장 골치가 아픈 사람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다. 도이체방크는 독일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살릴 수 있다. 그러나 구제금융을 해도, 안 해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 문제다.

 1870년 설립된 도이체방크는 70여 개국에 10만 명이 넘는 직원을 둔 독일 최대 글로벌 은행이다. 독일인 수백만 명이 계좌를 갖고 있는 ‘독일의 상징’을 메르켈 총리가 모른 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많은 독일 언론들은 메르켈 총리가 구제금융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이탈리아 은행 구제에 워낙 강경한 선을 그어온 독일 정부로선 구제금융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올해부터 유럽연합(EU)에서 부실 은행에 구제금융을 집행하려면 주주와 채권자 등이 전체 채권의 8%를 포기해야 하는 규정이 발효됐다. 도이체방크의 경우 채권 소유자의 손실액이 1390억 유로(약 170조 원)로 추산된다. 이 조항은 다른 유로존 은행들의 구제금융을 엄격하게 하기 위해 독일이 주도해 만든 것이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은행의 구제금융에 강한 제동을 걸어온 독일 정부로서는 자기모순적인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EU 차원에서 구제금융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메르켈 총리가 수용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바로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다. 그러잖아도 난민 온정주의 정책 때문에 역대 최저 수준의 지지율에 허덕이는 처지에서 은행 부실을 세금으로 막을 경우 정치적 부담이 만만찮을 것이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자이퉁은 “메르켈 총리가 구제금융을 택한다면 그건 납세자들과의 약속을 깨는 것”이라며 “유권자들이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으로 몰려가 연임이 어려울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지그마이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도 “투기를 사업 모델로 만든 은행(도이체방크)이 이젠 스스로를 투기자들의 희생자라고 선언하다니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은행은 무책임한 경영진이 저질러 놓은 무모한 짓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도이체방크는 전 세계에서 7800건의 송사에 휘말려 2012년 이후 소송 비용으로만 120억 유로(약 14조7600억 원)를 쓸 정도로 부도덕한 행태를 보여 여론도 좋지 않다. 카를테오도어 추 구텐베르크 전 독일 경제장관은 “메르켈 총리가 구제금융을 택하기도, 도이체방크를 버리기도 힘들다. 플랜B조차도 없다면 이는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도이체방크 사태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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