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지하실族’ 지칭에 뿔난 밀레니얼 세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4일 03시 00분


 “샌더스의 일부 젊은 지지자들은 정치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밀레니얼 세대)은 대침체기(글로벌 금융위기)의 자식들이다. 부모(집)의 지하실에서 거주하고 배운 만큼의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69)이 민주당 경선이 한창이던 올 2월 버지니아 주의 한 비공개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당내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5·버몬트)의 젊은 지지자들을 ‘부모 집 지하실에 거주하는 사람들(living in their parents' basement)’로 표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커지고 있다. ‘비공개 발언 유출 사고’가 선거를 5주 앞두고 터진 것이다. 경제 양극화에 피해 의식이 큰 밀레니얼 세대를 자극했다는 점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클린턴 후보에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로 천년의 끝에 태어나 새 천년을 이끌어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일 뉴욕의 대중지인 뉴욕포스트는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지하실 거주자(#basementdweller)’란 해시태그를 단 분노의 글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클린턴이 최근 “도널드 트럼프(70)의 지지자 절반은 개탄할 집단(deplorable group)”이라고 말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개탄할 집단’과 ‘지하실 거주자’가 연대해 클린턴을 반드시 낙선시키자”고 주장했다.

 문제의 발언은 샌더스의 공약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클린턴은 “그런(지하실에 사는) 불행한 세대여서 샌더스가 말하는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식 무상 대학교육이나 무상 의료보험 같은 실현 불가능한 공약에 더 쉽게 이끌린다”고 설명했다. 또 “나는 중도 좌파에서 중도 우파 쪽으로 가고 있다”며 “여러분은 대통령이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이해할 것이다. 나는 (샌더스처럼) 못 지킬 약속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전체 맥락보다는 클린턴이 비유한 ‘지하실 거주자’라는 자극적인 발언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어 클린턴이 궁지로 몰리고 있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는 “클린턴 말대로 많은 젊은이들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부모집 지하실’에 살 때 클린턴 딸 첼시(36)는 부모 덕분에 1000만 달러(약 110억 원) 호화 아파트에 살았다”고 비꼬았다. 한 샌더스 지지자는 트위터에 “클린턴 당신 눈엔 우린 그저 ‘지하실 거주자’에 불과하겠지. 그래서 우리가 당신에게 이미 말했잖아. ‘버니(샌더스)가 아니면 꽝(Bernie or Bust)’이라고…. 우리 없는 당신의 대선에 행운을 빌게”라며 야유했다. 그동안 ‘샌더스 지지자 빼오기’에 공 들인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와 유세 등에서 “샌더스는 자신과 자신의 지지자들을 모욕한 클린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클린턴의 ‘지하실 거주자’ 발언은 기금 모금행사 관계자의 e메일이 해킹당하면서 음성파일 형태로 보수 성향 인터넷 매체인 ‘워싱턴프리비컨’에 전달돼 고스란히 공개됐다. 4년 전인 2012년 대선 당시에도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플로리다 주의 가정집에서 열린 기금모금 행사에서 한 발언이 동영상으로 잡지사에 전달돼 폭로되면서 롬니가 곤경에 빠졌다. 당시 롬니 후보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민주당 대선 후보) 오바마에게 투표하는 47% 미국인이 있다. 이들은 정부에 의존하면서 자신들이 ‘희생자’라고 주장하고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계층”이라고 말했고, 이 발언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연대감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 언론들은 “이번 사건으로 샌더스에게 열광했던 밀레니얼 세대가 곧바로 트럼프 지지자로 돌변하진 않겠지만 기권표가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힐러리#밀레니얼세대#지하실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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