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英 ARM 인수 준비” 10년전 극비지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소프트뱅크 ‘35조원 베팅’ 뒷얘기

일본 기업 사상 최대 규모(약 35조 원)의 해외 인수합병(M&A)으로 기록된 소프트뱅크의 영국 반도체회사 ARM 인수는 손정의 회장(사진)의 ‘10년간의 집념’ 때문에 가능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5일 보도했다.

손 회장은 10년 전부터 ARM에 관심을 갖고 재무부서에 ‘언제든 살 수 있게 준비해 놔라’고 극비 지시를 내렸다.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두뇌 역할을 할 반도체 설계 회사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2012년 그가 선택한 것은 미국 3위의 통신기업 스프린트였다. 일본 통신산업에서 다진 기반을 활용해 이동통신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되겠다는 야심을 갖고 216억 달러(약 24조6240억 원)를 투자했다.

손 회장은 스프린트에 이어 미국 4위 통신기업 T모바일을 인수한 뒤 스프린트와 합쳐 단숨에 업계 선두로 치고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 통신 당국이 ‘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반대하면서 T모바일 인수는 좌절됐다. 그러면서 미국 시장 내 순위는 4위로 떨어졌고, 일본에서도 3위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손 회장은 최근 주변에 “나는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6월 초 ‘이동통신 시장에서 어떻게 해도 압도적 1등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무대를 바꾸자고 방향을 틀었고 ARM 인수 결심을 굳히게 됐다는 것이다.

고민은 길었지만 결정을 내린 후에는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6월 중순 후계자로 꼽던 니케시 아로라 부사장(48)에게 ‘퇴임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어 6월 말 사이먼 시거스 ARM 최고경영자(CEO)를 미국 실리콘밸리 자택으로 초청해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이달 4일 터키의 항구에서 스튜어트 체임버스 영국 ARM홀딩스 이사회 의장을 만나 정식으로 인수 의사를 밝힌 뒤 2주 만에 인수를 마무리지었다.

인수 발표 후 소프트뱅크 주가는 10%가량 떨어졌다. ARM은 통신용 반도체 설계에서 90% 이상 점유율을 갖고 있지만 매출은 15억 달러(약 1조7000억 원) 남짓에 불과하다. 순이익으로 인수 금액을 회수하려면 약 70년이 걸린다.

하지만 손 회장은 “바둑으로 치면 50수를 내다본 것”이라며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그는 인수 발표 직후 “20년 후에는 지구상에 ARM의 칩 1조 개를 뿌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48억 개에 불과한 ARM의 칩 출하량을 70배로 늘리겠다는 뜻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