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8개월 만에 돌아온 ‘반체제 서점’ 점장 “5개월 감금” 폭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7일 14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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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실종된 후 약 8개월 만에 돌아온 홍콩 ‘반체제 서점’의 점장이 자신이 어떻게 중국 당국에 억류되고 조사를 받았는지 기자 회견을 통해 상세히 밝혔다. 이로써 지난해 10월 이후 발생한 5명의 ‘홍콩 금서 서점 관계자 실종 사건’은 진상 규명의 실마리가 마련됐다. 그는 서점 대주주인 리포(李波) 씨가 홍콩에서 중국 공안에 의해 중국 대륙으로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고 폭로해 일국양제(一國兩制) 침해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중국에 억류돼 조사를 받다 14일 홍콩에 돌아온 ‘퉁뤄완(銅¤灣)서점’ 점장 린룽지(林榮基·61) 씨는 돌아온 직후에는 실종됐다 먼저 돌아온 동료 3명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실종 사건을 더 이상 조사하지 말아달라고 홍콩 경찰에 요구했다. 실종된 5명 중 구이민하이(桂敏海) 씨는 아직 중국에서 조사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린 씨는 16일 공개 기자 회견을 갖고 자신의 강제 억류 및 조사경위를 등을 자세히 밝혔다. 이 자리에는 입법위원 등도 일부 참여했다.

린 씨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17일까지 서점 고객 명단이 들어있는 하드디스크를 가지고 오라는 조건으로 석방돼 홍콩으로 왔다”며 “하지만 홍콩에 와서 이틀 밤을 고민하다 중국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의 안전 위협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말하기로 했다”며 “이번 사건은 홍콩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이자 홍콩의 일국양제 위반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린 씨는 특히 지난해 10월 홍콩에서 대륙으로 연행된 것으로 알려진 리보 씨가 공개적으로는 “스스로 중국으로 갔다”고 말했지만 15일 자신과 만나서는 “홍콩에서 연행돼 중국으로 갔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리보 씨가 실종된 뒤 그의 출국 기록이 없어 제기된 내용이었다. 올해 3월 홍콩에 돌아온 리보 씨는 “스스로 조사에 협조하기 위해 대륙에 갔다”고 밝힌 이후 함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리보 씨 등 다른 실종 후 귀환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는 경우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된 홍콩은 ‘홍콩 기본법’에 따라 2047년까지는 국방 외교 외에는 고도의 자치가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중국 공안이 홍콩에서 시민을 연행해 대륙으로 데려가 조사했다면 이는 일국양제에 위배되는 것이다.

홍콩 정부 대변인도 16일 “내지(중국)든 해외 집행기관이든 누구도 홍콩에서 법 집행 권한이 없다”며 “린 씨가 언론에 밝힌 내용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린 씨는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으며 오직 바라는 것은 자유를 되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세계 말하고 싶다. 홍콩인들은 야만적인 폭력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것이 최저한의 양식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린 씨가 16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자신에 대한 연행 및 조사 경위는 이렇다.

지난해 10월 24일 린 씨가 여자 친구를 만나기 광둥(廣東) 선전(深¤)의 출입국 검색대를 넘는 순간 어떤 잘못을 했는지에 아무런 설명 없이 선전의 한 경찰서로 연행됐다. 그는 밤새 한 잠도 자지 못하고 억류되어 있으면서 여행증명서와 신분증은 압수됐다.

다음날 오전 7시경 간단한 아침을 먹은 후 북쪽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는 눈이 가려지고 모자가 씌워졌으며 기본적으로 포박 상태였다. 그가 13, 14시간가량 기차를 타고 가서 도착한 곳은 저장(浙江) 성 닝보(寧波). 기차에서 내려서 자동차로 45분을 가서 한 커다란 빌딩에 도착했다. 그는 2층에 억류됐으며 옷도 갈아입게 했다.

혼자서 무기력한 상태에서 앞으로 가족과 연락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인 도움을 받는 등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문서에 서명했다. 그들은 단지 ‘가택 감시’를 받는 것이라고 했지만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직 창밖으로 푸른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외부와의 접촉의 전부였다. 린 씨는 닝보에서 5개월간 1주일에 약 4차례, 한 차례에 약 1시간 남짓씩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린 씨는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초현실적인 상황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았으며 이는 꿈이지 현실이 아니길 바랬다”고 당시의 절박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나는 홍콩인으로 자유인이다.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5개월간을 감금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라도 장기간 감금되어 있으면 미쳐 버릴 것”이라며 “그들도 이를 알고 준비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일례로 자신이 사용하는 칫솔에 줄을 매달아 사용이 끝나면 회수해갔다. 혹 칫솔을 삼켜 자살이라도 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2월 광둥 성 공안은 홍콩 경찰에 린 씨와 그의 동료 뤼보(呂波) 장즈핑(張志平) 씨 등이 ‘대륙에서의 불법 행위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알렸다. 이어 2월 말 린 씨는 펑황(鳳凰)TV를 통해 대륙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금지된 책을 판매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린 씨는 “나는 누가 써 준대로 기억했다가 TV 앞에서 그대로 읽은 것뿐이다. 내가 제대로 읽지 않았다면 다시 녹화했을 것”이라며 “TV에서의 고백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닝보에서 5개월 가량 조사를 받은 린 씨는 올해 4월 광둥 성 샤오관(韶關)으로 옮겨졌으며 이곳에서는 형편이나 대우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퉁뤄완 서점 관계자 5명 실종 사건은 지난해 10월 서점 지분 소유주 구이민하이 씨가 태국 파타야에서 실종되면서 시작됐다. 같은 10월 서점 점장 린룽지 씨, 주주이자 이사인 뤼보(呂波)씨, 업무 담당 경리 장즈핑(張志平) 씨 등도 광둥 성 선전 등에서 연락이 두절됐다. 이 사건은 리보 씨가 12월 30일 홍콩에서 실종된 뒤에야 공개됐다. 올해 1월 4일 홍콩 밍(明)보 등이 이들의 실종 사건을 보도하면서다.

중국에서 판매가 금지된 책을 팔아 ‘금서(禁書) 서점’으로도 불리는 퉁뤄완 서점은 2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특히 2014년 10월 이후 4000여권의 금서를 대륙으로 판매한 것이 문제가 됐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전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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