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딴 논란 겪는 반기문…NYT “위험 회피형” 비판뒤 옹호하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2일 18시 09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72)이 최근 공·사석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유종의 미’다. 사무총장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그는 “12월31일 임기 끝날 때까지 직무에 최선을 다하겠다.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해왔다. 특히 ‘반기문 대망론’(반 총장의 대권 도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한국 정치권이나 한국 언론들을 향해 이런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러나 반 총장의 이런 의지와 달리 주요 외신들의 ‘반기문 유엔 10년’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지 않다. 또 차분히 임기를 마무리하려는 반 총장을 둘러싼 이런저런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달 차기 유엔 사무총장 선출 문제를 다루면서 반기문 사무총장을 ‘실패한 총장이자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 명’이라고 혹평해 국내외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낳았다.

이코노미스트는 “반 총장이 코피 아난 등 전 총장들에 비해 강대국들에 맞서는 것을 싫어했다”며 “말도 잘 못하고, 절차에만 집착하고, 현안에 대한 빠른 대처 능력이나 업무 깊이도 부족하다. 가장 활기 없는, 최악의 총장 중 한 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국 내에서는 반 총장과 함께 일했던 몇몇 전현직 외교관들을 중심으로 “이코노미스트 등 일부 영미 언론의 반 총장 비판은 ‘인종주의적 편견이 담겨 있는, 객관성이 부족한 폄훼 보도’”라는 반박이 나오기도 했다.

대사 출신의 한 인사는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 외교관들이 보는 반 총장은 부정이나 비리와는 거리가 먼 깨끗하고 성실한 지도자이다. 인간관계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친화력도 강한 분이다. 열린 지도자로 평가하고 있다”며 이코노미스트의 혹평을 비판했다.

한편 반 총장이 지난 9일 유엔본부 기자회견에서 “내(유엔 사무총장)가 최근 아동인권 침해 블랙리스트 명단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 연합군을 빼야 했던 이유는 ‘사우디의 유엔기금 지원 철회 압력’에 굴복했기 때문”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사안도 적지 않은 파문을 낳고 있다.

반 총장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며 “그 압력대로라면 향후 수백만 명의 다른 아이들이 고통 받을 수도 있을 것이란 점도 고려했다. 더 큰 선의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돈(재정) 문제 때문에 도덕적 명분을 포기해야 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셈이고 유엔 수장이 유엔 회원국(사우디)의 압력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셈이다. 이에 사우디 측은 “우리는 기금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고, 유엔을 협박하지도 않았다”고 반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0일 이 파문을 보도하면서 “역대 유엔 사무총장은 크건 작건 회원국들의 강력한 정치적 압력에 자주 직면했는데, 반 총장 임기 중엔 ‘곤란한 타협(awkward compromises)’이 많았던 기간”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반 총장을 “위험 회피형(risk-averse)”이라고 표현하면서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자꾸 물러서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지난해 유엔 특사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어린이 인권침해국 명단에 올릴 것을 권고했으나, 반발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강한 로비로 결국 둘 다 명단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반 총장은 올해 초 아프리카 서사하라의 영유권 분쟁 해결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모로코의 서사하라 합병을 ‘점령’으로 표현해 논란을 빚었고 모로코가 서사하라 유엔 파견단을 철수시키며 크게 반발했지만 모로코의 우방인 프랑스가 버틴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는 모로코를 비판하지 않았다. 결국 반 총장 대변인이 “오해가 빚어진 데 대해 유감”이라며 사실상 사과해야 했다.

뉴욕타임스는 “유엔은 2014년 1월 시리아 내전종식을 위한 국제평화회담에 이란 정부를 초청했으나, 미국이 강하게 반발하자 하루 만에 그 초청을 철회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11일자 사설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 반기문의 자리’에서는 “사우디에 굴복했다며 반 총장을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유감이라면 사우디가 반 총장을 그런 고약한 처지로 내몰았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반 총장 개인의 능력이나 리더십보다 유엔 시스템의 한계, 유엔 회원국들의 이해충돌 등이 더 큰 문제라는 얘기다. 사설은 이어 “반 총장이 사우디의 압력에 굴복한 것은 괴롭기는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반 총장이 이를 공개하고 (사우디의) 압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유엔은 인권 문제 등에 위선적 태도를 보여 왔는데 인권침해로 비난받는 국가들이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을 번갈아 맡는 것을 대표적 사례로 신문은 거론했다. 사우디도 현재 인권이사회 이사국이다.

유엔 안팎에선 “뉴욕타임스가 기사로는 반 총장을 ‘위험 회피형 리더’라고 사실상 비판하고, 사설로는 ‘반 총장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다’고 역성을 들어줬다. 한 마디로 ‘병 주고, 약 주고’ 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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