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중국’ 언급않고 “구동존이”… 양안관계 긴장 속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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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대만 첫 女총통 취임]
대만 ‘8년만의 정권교체’ 현장

20일 오전 대만 타이베이의 중심가 카이다거란(凱達格蘭)의 총통부 앞 광장. 1970∼80년대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하던 민주화운동 노래 ‘메이리다오(美麗島)’가 울려 퍼지면서 차이잉원(蔡英文) 14대 대만 총통의 취임식은 절정에 달했다.

차이 총통은 타이베이 두이화(敦化) 초등학교 합창단 등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하다 중간 부분에 손을 휘두르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대만의 별칭이자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이 노래는 한때 금지곡으로 지정돼 대만판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불린다. 국민당에서 민진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취임식은 대만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차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세계에는 지구도 하나, 대만도 하나”라고 말하고 대만을 41차례, 대만 공식 국호인 ‘중화민국’을 5차례 언급했다. 차이 총통 출신 부족인 파이완(排灣)족 어린이들이 민속의상을 입고 파이완 언어로 대만 국가를 불렀다. 원주민 부족을 상징하는 다섯 개 인형이 식장에서 원주민을 뜻하는 본성인(本省人·1949년 이전부터 대만 거주자)의 시대를 알렸다.

차이 총통은 취임사를 통해 중국에 대해서도 각을 세웠다. 중국이 요구해온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의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을 계승할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이런 (합의가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존중한다”면서 “1992년 이후 양안은 상호교류와 협상을 통해 거둔 성과를 모두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차이 총통은 “1992년 양안은 회담을 통해 서로를 양해하고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찾는 것)’ 정신이라는 공동 인식에 도달했다”며 “양안 간 대화와 소통을 통해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올 1월 당선 이후 줄곧 강조해온 ‘양안 현상유지론’에 거듭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차이 총통은 이어 양안 관계에서 4가지 정치적 기초로 △1992년 양안회담의 역사적 사실과 구동존이에 대한 공감대 △중화민국의 현행 헌정 체제 △과거 20년 양얀 교류의 역사를 통해 이룬 성과 △대만의 민주 원칙과 보편적 민의 등을 강조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간주하고 일제히 반발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에 어떤 변화가 있어도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견지할 것”이라며 “대만 독립 반대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실현한다는 정치적 기초를 확인할 때에만 비로소 양안 간 제도화된 교류와 왕래가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 “차이 총통 취임은 대만 민주주의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2350만 명의 대만인들에게 도전의 시기가 될 수도 있다”며 더욱 거세질 중국의 압박을 이겨내는 것이 당장 맞닥뜨린 과제라고 지적했다.

첫 여성 총통의 취임식이자 2000년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에 이은 두 번째 민진당 정부가 등장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대만 국민들은 30도의 더운 날씨에도 오전 8시로 예정된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광장을 가득 메웠다. 시민들은 민진당을 상징하는 녹색의 긴 수건을 들고 있었다.

오전 9시경 1000여 명이 ‘대만의 빛’ 퍼포먼스를 벌였다. 네덜란드 점령기, 청나라, 일제강점기 그리고 국민당 정부 등을 거친 400여 년의 역사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이어 ‘대만민주행진곡’ 공연에서는 록밴드 ‘몌훠치(滅火器)’가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축하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총통부 내 ‘징궈(經國)청’에서는 차이 총통과 천젠런(陳建仁) 부총통이 물러나는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지켜보는 가운데 취임 선서를 했다. 차이 총통은 집무실로 와 행정원장(총리 격)과 국가안보회의 비서장 임명장에 서명하면서 첫 업무를 시작했다.

오전 11시를 넘어 차이 총통이 행사장에 손을 흔들며 나타나자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1만9000여 명의 참가자는 ‘총통! 안녕하십니까’를 연호했다. 차이 총통은 취임사를 마치면서 “취임사는 끝났지만 개혁은 이제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대만#차이잉원#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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