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구자룡]훙슈주의 대만 국민당, 무엇으로 살아남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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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26일 대만 국민당 주석 보궐선거에서 훙슈주 전 입법원 부원장(국회부의장 격)이 당선되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즉각 ‘총서기’ 이름으로 축전을 보냈다. 훙 주석도 늦은 저녁 시간임에도 바로 당일 답전을 쳤다. 새로 선출된 대만 국민당 주석이 중국 최고지도자로부터 축전을 받은 것은 훙 주석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마잉주 당시 국민당 주석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축전을 받았다.

그럼에도 중국의 훙 주석에 대한 축하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훙 주석은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에 대한 입장 때문에 정치적으로 역풍을 맞았던 인물이다. 그는 ‘92공식(共識·1992년 합의한 것으로 중국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해석은 각자에 맡긴다는 것)’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보다 양안의 일체성을 더욱 강조한다.

훙 주석의 이런 입장은 1월 총통 선거와 입법원 선거에서 민진당이 압승한 데서 확인됐듯이 대만의 ‘탈중국’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지난해 훙 주석이 당내에서 두 차례나 후보 검증 관문을 거쳐 공식 총통 선거 후보로 선출됐음에도 낙마해 후보가 교체된 것도 그의 양안관에 따른 낮은 지지율이 한 요인이었다.

지난해 11월 시 주석과 마 총통이 양안 분단 후 66년 만에 만난 것처럼 지금의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관계는 ‘3차 국공합작’이라 불린다. 하지만 국민당의 이런 국공 관계는 당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만 국민당은 항일 전쟁 시기 두 차례 국공합작과 결렬이 있은 후 내전에서 공산당에 져 1949년 대만으로 쫓겨 왔다. 장제스 장징궈 전 부자 총통 시절 국민당 정부하의 양안 관계는 38년간 계엄령이 계속되면서 사실상 적대관계였다. 리덩후이는 첫 본성인(1949년 이전부터 대만 거주민) 출신 총통(1988∼2000년)으로 양안을 ‘특수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라며 ‘양국론(兩國論)’을 폈다. 중국은 리 전 총통의 ‘반(反)중 노선’에 반발해 1996년 처음 직선제 총통 선거에 나섰을 때 대만 주변 바다에 미사일 발사 훈련까지 하며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986년 대만 독립을 내걸며 창당한 민진당은 2000년 자당 출신 첫 총통(천수이볜)을 당선시켰고, 올 1월에는 총통과 입법원을 모두 차지했다. 총통 선거 취재를 위해 대만에 갔을 때 만난 한 대만 중견 언론인은 “국민당은 이번 선거 참패가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존립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했다. 양안 관계에 대한 대만의 큰 물줄기가 바뀌고 있는데 국민당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새로운 물줄기란 대만 주민들 중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급속도로 늘고 ‘양안 협력만이 대만 경제를 살린다’는 당근만으로는 대만의 탈중국 속도를 줄이지 못하는 형국을 말한다.

전신인 흥중회(1894년 창립)가 1919년 10월 이름을 바꾼 대만 국민당은 아시아 국가의 근대 정당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정당으로 창당 이래 최대의 정체성 위기를 맞고 있다. ‘제국주의에 맞선 독립 근대국가 건설’ ‘항일’ ‘대만 건설과 근대화’ ‘양안 협력’…. 이제 국민당은 무엇으로 존재 이유를 찾을 것인가. 지난달 30일 취임식에서 “9대 주석을 맡아 (창당 이래) 최악의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스스로를 불태우겠다”는 결의를 다짐한 훙 주석과 국민당의 과제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대만#국민당#홍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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