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주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5·버몬트·사진)은 9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 승리한 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표현했다.
언뜻 보면 특별하지 않은 말이지만 미국인들은 샌더스가 스스로를 ‘폴란드계 유대인 이민자’라고 표현하지 않은 데 대해 점점 궁금해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5일 보도했다.
샌더스는 아버지 형제 중 3명이 홀로코스트(나치 정권의 유대인 대학살)에서 사망했다. 대학 졸업 후엔 이스라엘에서 키부츠(협동농장) 활동도 했다. 하지만 공립대 학비 면제나 최저 시급(時給) 인상 같은 선거공약은 목청껏 외치면서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극도로 언급을 꺼린다.
뉴욕의 유대교 랍비(지도자)인 마이클 패리는 샌더스가 연설 중 ‘폴란드계 이민자의 아들’이란 표현을 쓰는 것을 TV로 보며 놀랐다. 오래전부터 유대인은 폴란드에 거주했지만 순수 폴란드인과 구별돼 왔고, ‘반(反)유대인 정서’도 만만찮았기 때문에 샌더스가 이런 발언을 한 건 일반적인 유대인 정서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것이다.
패리는 “폴란드인 중 유대인인 샌더스를 진짜 폴란드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일부 폴란드인은 유대인을 보호해 줬지만 적지 않은 수는 나치에 협력했고, 90%의 폴란드 거주 유대인이 사망했다.
샌더스는 의정 활동 중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2국가 체제’에 찬성했다. 또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한 무력 조치에 비판적이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샌더스에 대해 ‘유대인이 아닌 유대인’이라는 말도 나온다. 미 재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유대인들이 샌더스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데는 그의 사회주의적 성향 못지않게 이런 배경도 있다. 미국 사회에선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데 적극적인 편이다. 많은 유대인이 크리스마스 때 기독교 색깔이 강한 ‘메리 크리스마스’란 인사 대신 ‘해피 홀리데이(Happy Holiday)’란 표현을 쓴다.
샌더스가 유대인임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의 부모가 유대인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교육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샌더스의 아버지는 유대교의 ‘속죄일’에만 회당에 갔고, 어머니도 정통 유대교식 교육을 선호하지 않았던 집안 출신이다.
하지만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기독교가 아닌 가톨릭 출신이라 어려움을 겪었던 것처럼 샌더스도 정치적으로 불이익을 받을까봐 그런다는 분석도 있다. 랍비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는 대학생 조시 그린버그는 “유대인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샌더스의 배경을 악용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구의 반유대 성향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때 프랑스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다 2011년 성추행 의혹으로 물러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자신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꼽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갤럽 조사에서는 미국인 92%가 ‘유대인 대통령도 뽑을 수 있다’고 답해 미국 내 반유대인 정서는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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