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후진타오 ‘反부패 투쟁’ 정치동맹 맺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5일 03시 00분


후진타오 前주석, 中개혁 아이콘 후야오방 古宅 방문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앞줄 가운데)이 11일 중국 후난 성의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 고택을 둘러본 뒤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출처 홍콩 밍보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앞줄 가운데)이 11일 중국 후난 성의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 고택을 둘러본 뒤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출처 홍콩 밍보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국가주석이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25주년을 한 달여 앞두고 6·4사태를 촉발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개혁파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의 고택(古宅)을 전격 방문했다. 후 전 주석이 지난해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톈안먼 사태에 대한 재평가 가능성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후 전 총서기의 사망 25주기(15일)를 며칠 앞두고 후 전 주석은 11일 후난(湖南) 성 류양(瀏陽) 시 중허(中和) 진에 있는 후야오방 기념관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일행은 동상에 절을 하고 헌화한 뒤 인근 고택도 찾았으며 기념관에서는 1시간가량 머물렀다.

11일 후 전 주석은 기념관을 방문하면서 후난 성의 쉬서우성(徐守盛) 서기와 두자하오(杜家毫) 성장을 대동했다. 기념관과 고택은 물론이고 주변 지역까지 관광객의 출입을 막는 등 철저한 통제가 이뤄졌다. 그의 방문에 대한 언론 보도는 철저히 통제되고 인터넷에서도 관련 댓글이 삭제되고 있다. 후야오방은 후진타오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청년단’ 제1서기를 지낸 인물로 후 전 주석의 정치적 스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후 전 주석의 후 전 총서기 고택 방문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사전 양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정치적 의미를 띠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시 주석은 지난해 취임 이후 강도 높은 반(反)부패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기득권을 가진 보수 세력이 이에 반발하면서 당 안팎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중국 권력의 한 축인 ‘상하이방’을 이끄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부패 척결에 제동을 거는 상황에서 후 전 주석의 정치적 도움이 절실했다는 것이다.

정치분석가 가오위(高瑜) 씨는 “후 전 주석이 시 주석의 ‘허락과 배려’하에 후 전 총서기 기념관과 고택을 찾은 것은 자신의 개혁에 대한 지지를 구하고 나아가 정치동맹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핑궈(빈果)일보는 14일 “시 주석이 ‘개혁의 아이콘’인 후야오방의 힘을 빌려 보수파를 압박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후야오방은 1987년 학생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총서기직에서 실각했다. 당시 덩샤오핑(鄧小平)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쫓아냈으나 시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勳) 중앙서기처 서기가 구명에 나서기도 했다. 후 전 주석은 당시 구이저우(貴州) 성 서기였다. 후 전 총서기가 1989년 사망한 뒤 대학생과 시민이 톈안먼에 모여 민주화를 요구하다 군이 무력 진압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 후 전 주석의 방문이 후야오방 복권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후야오방의 아들 후더화(胡德華) 씨는 아버지의 복권에 대해 “우리는 정부가 어찌 평가하든 개의치 않는다. 악비(岳飛)는 관(官)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나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남송시대의 장수였던 악비는 여진족 금(金)의 침입을 막는 데 공을 세웠으나 모함으로 죽임을 당한 중국의 대표적인 애국자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시진핑#후진타오#반부패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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