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뱅크런… 제2 그리스 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9일 03시 00분


유로존 퇴출 논란이 심화되고 있는 그리스에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이 시작된 데 이어 경제위기 ‘후보국’인 스페인에서도 뱅크런 조짐이 나타나 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17일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가 최근 국유화한 대형은행 방키아에서 9일 이후 10억 유로(약 1조5000억 원)가 넘는 예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올 1분기 전체 인출액과 비슷한 규모다. 이에 대해 스페인 재무부는 “사실이 아니다. 스페인에서 뱅크런이 일어날 위험은 적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이날 자산 규모 1위인 산탄데르를 포함한 16개 스페인 은행의 신용등급을 1∼3단계씩 하향 조정했다. 산탄데르와 2위 은행인 BBVA 모두 ‘A3’로 3단계씩 떨어졌다. 대형은행 바네스토와 카익사도 각각 ‘A3’로 하향됐다. 소형은행 3개는 투기 등급까지 하락했다. 지방정부 4곳의 등급도 함께 낮아졌다.

무디스는 “부동산 회사의 불량채권이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금융권이 취약해진 상태이며 정부의 신뢰도 하락이 등급 하락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대규모로 이뤄진 은행들의 부동산 대출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부실자산으로 변했다. 스페인 은행이 보유한 부동산 대출 규모는 3070억 유로(약 456조 원)로 이 가운데 60%(약 1840억 유로)가 부실자산이다.

한편 그리스는 14일부터 이틀 동안 은행에서 빠져나간 예금이 적어도 12억 유로(약 1조7800억 원)에 이르며 이로 인해 몇몇 은행이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기 시작했다고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 등이 18일 보도했다. 그리스의 현재 뱅크런 규모는 첫 구제금융이 있던 2010년 봄 당시 매달 평균 20억∼30억 유로였던 것과 비교할 때 훨씬 크다. 은행 관계자들은 14일에만 그리스 은행에서 7억 유로 이상이 빠져나간 데 이어 15일도 5억 유로 이상의 뱅크런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IG마켓증권 프랑스의 아르노 푸티에 부대표는 “그리스 은행 시스템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 최악의 상황인 뱅크런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 민영화공사는 현재 진행 중인 공공 기업 및 재산의 민영화 작업에 대한 결정을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전면 중단했다고 발표했다. 수십억 유로에 달하는 재정적자 감축 계획과 은행의 재자본화 계획도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긴축정책 저지 공약을 내세워 총선에서 2당에 오른 급진좌파연합(시리자당)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대표는 17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가 재정적으로 몰락하면 유로존 나머지 국가까지 끌어내릴 것”이라며 “유럽이 그리스에 자금 지원을 중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유럽이 자금 지원을 중단한다면 그리스는 부채를 갚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의 ‘인류적 위기’를 해결하려면 유럽이 좀 더 성장 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일 나온 여론조사에선 구제금융을 지지하는 중도우파 신민주당이 다음 달 2차 총선에서 26.1%를 얻어 1당에 오르고 시리자당은 23.7%로 2당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전 조사들에서는 시리자당이 1당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 때문에 유로존 퇴출 위기의식을 느낀 국민의 표심이 바뀌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신용평가기관 피치는 17일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CCC’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피치는 “지난 총선에서 반(反)긴축 성향의 정당들이 강세를 보이고 새 정부 구성에 연속적으로 실패함에 따라 유로존에서 이탈할 위험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스페인 뱅크런#유로존 퇴출#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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