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수치 여사 “가택연금 이제는 두렵지 않아… 한국인 미얀마 관심 항상 감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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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강은지 기자,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나다
‘미얀마의 봄’ 현지르포

아웅산 수치 여사가 7일 오전 집무실에서 동아일보 강은지 기자(왼쪽)를 맞으며 인사 말을 건네고 있다. 가운데 남자는 통역. 양곤=이승헌 채널A 기자 CANN023@donga.com
아웅산 수치 여사가 7일 오전 집무실에서 동아일보 강은지 기자(왼쪽)를 맞으며 인사 말을 건네고 있다. 가운데 남자는 통역. 양곤=이승헌 채널A 기자 CANN023@donga.com
7일 오전 미얀마의 옛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양곤 시.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67)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당사 입구는 당원과 지지자, 외신기자 등 300여 명으로 북적였다. 지난해만 해도 경찰 통제로 사람들의 출입이 불가능했던 곳이다. 하지만 1일 보궐선거에서 NLD가 압승을 거둔 이후 수치 여사를 보려는 시민들과 새로운 당원 가입 신청자, 민원인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미얀마의 봄’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아침 일찍 당사로 출근해 쉴 틈 없이 빡빡한 일정을 보낸 수치 여사는 오전 9시 20분 NLD 당사 2층 총재 집무실에서 부드러운 미소로 동아일보 취재팀을 맞았다. 1일 선거 이후 해외 언론과의 첫 대면을 동아일보와의 단독 면담으로 잡은 것이다. 면담엔 조계종 총무부장 영담 스님이 함께했다.

“사실 4월엔 해외 언론을 대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어요. 각종 회의로 정말 바쁜 시기거든요.” 수치 여사는 서울에서 온 기자를 환한 미소로 환영하면서 작지만 또박또박한 어조로 말했다. 국회에는 23일부터 출석한다고 했다.

수치 여사는 “한국인들이 미얀마(민주화)를 관심 갖고 지켜봐 주는 것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오늘은 선거에서 당선된 당원들이 처음으로 함께 모여 회의하는 날이에요. 최고위원들 회의도 해야 하고요. 오후엔 또….” 한마디 한마디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가 충만했다.

총재 집무실은 10m²(약 3평) 남짓으로 소박했다. 벽에는 부친인 버마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사진과 수치 여사의 상반신 사진이 걸려 있었고 작은 책상과 테이블 위엔 서류더미와 주민들이 보내준 작은 선물들이 쌓여 있었다. 응접세트도 없이 책상과 의자가 가구의 전부였다. 개인비서도 없고, 휴대전화도 보이지 않았다. 160cm 남짓한 키에 마르고 작은 체구, 초록색 상의와 롱지(미얀마 전통의 통치마)를 입은 의상에서는 검소하고 겸손한 성품이 그대로 우러나왔다.
▼ “법치주의 - 내전종식 - 개헌 의정활동 목표는 이 세가지” ▼

여사의 귀 뒷머리 양쪽에 꽂혀 있는 네 송이 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으로서의 내면을 살짝 드러냈다. 수치 여사는 머리의 꽃만은 매일 바꿀 정도로 꽃을 좋아한단다. 기자가 미리 준비해 간 영국 과자를 선물로 건네자 “한국 사람이 왜 영국 과자를?”이라면서도 “정말 좋은 선물”이라며 기뻐했다.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수치 여사는 1964∼1988년 영국에서 살았다.

이날 수치 여사는 최고위원회의를 위해 자리를 떠날 때까지 특유의 자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인 8일 오전 11시 자택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는 오랜 기간 독재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화 외길을 걸어온 민주화 지도자답게 강한 의지와 자신감,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자택에서 소수민족 세력인 카렌족 대표들을 만난 뒤 기자회견을 한 수치 여사는 먼저 소수민족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우리의 목표는 진정한 민주주의이며, 이를 이루기 위해선 소수민족도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카렌족을 포함한 소수민족은 현 정부와 독립권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고 수치 여사는 1990년 총선 때부터 다당제 민주주의를 주장해 왔다.

이번 보궐선거에 참여한 목적도 설명했다. “법치주의, 내전 없는 나라, 헌법 개정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 세 가지 목표를 바탕으로 소수민족을 하나로 아우르면서 (국회에서) 당당히 맞설 겁니다.”

“그동안 가택연금을 당한 것처럼 국회에서도 연금 형태의 제재가 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오랫동안 가택연금을 당해서 이젠 두렵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시종일관 미소 띤 얼굴이었다.

그가 약 15년간 연금생활을 당했던 집 마당엔 각양각색의 꽃이 피어 있었고 저택 옆 인야 호숫가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지난해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대문을 나무문에서 철문으로 개조했다. NLD 당원들의 엄격한 통제로 사전 허가받은 언론인만 출입할 수 있었다.

섭씨 40도를 웃도는 날씨에 그늘 하나 없는 마당에서 이뤄진 기자회견이었지만 수치 여사는 재치 있는 답변으로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미얀마 수도인 네피도에 새 집을 구입했다는 소문이 있다”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 (내게) 사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 달라”는 답이 나와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각오를 얘기할 때에는 힘이 넘쳤다.

“지금은 아니지만 우리는 언젠가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고 또 이뤄야 한다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평화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겁니다. 우리는 이제야 막 중요한 첫걸음을 뗐습니다.”

수치 여사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당 간부들을 만나 정책회의를 열고 선거 때 NLD가 제시했던 공약 이행 방안에 대한 토의를 진행했다. 이날 일정을 마무리한 시간은 오후 7시경. 선거 기간에 저혈압으로 두 번 쓰러진 뒤에는 건강을 고려해 대부분의 업무를 이 시간에 마무리한다고 한 관계자가 귀띔했다.

양곤=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아웅산수치#미얀마#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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