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광장에 선 교황 “카스트로 정권도 변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8일 03시 00분


■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처음 방문

“우리 모두 평화, 용서, 이해심으로 무장한 채 새롭고 개방된 사회, 인간애가 넘치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합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85)는 26일 쿠바 제2의 도시 산티아고데쿠바의 안토니오 마세오 혁명광장에서 열린 야외미사에 참석한 20여만 명의 쿠바시민에게 이렇게 말했다.

로마가톨릭 교황이 쿠바를 방문한 것은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 이후 14년 만이다. 광장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수천 명의 시민은 광장 진입 도로를 가득 채웠다. 군중은 찬송가를 불렀고 교황은 미소를 보냈다. 쿠바는 전체 인구의 약 85%가 로마가톨릭 신자다.

공항까지 나와 직접 교황을 영접한 무신론자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81)도 미사석 맨 앞줄에 앉았다. 교황은 쿠바 당국자들에게 변화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며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나는 쿠바가 이미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쿠바정부가 그들의 시야를 새롭고 넓게 하는 데 노력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미사에 참석한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벨키스 이보네트 로페스 씨(80)는 “공산정부가 지금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지배력을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됐다. 현재는 물가가 너무 비싸 살기가 어렵다”며 쿠바사회의 변화를 희망했다. 반면 산티아고의 한 호텔 종업원인 후아나 니리스 페레스 씨(55)는 “교황 방문을 계기로 50년간 이어온 미국의 경제제재가 풀렸으면 좋겠다”며 “우리의 경제체제는 바뀌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다른 나라가 쿠바의 경제체제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카스트로 의장이 정치범이나 반체제 인사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교회를 중재자로 삼아 왔다고 보도하며 공산국가 쿠바에서의 교회의 역할이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전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이날 교황의 방문을 환영하면서 “쿠바는 모든 종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된 인식을 반영하듯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는 수도 아바나의 혁명광장 한쪽 구석에 설치된 연단에서 미사를 봤지만 28일 베네딕토 16세가 마지막 미사를 집전할 장소는 혁명 관련 행사가 열릴 때만 이용되는 혁명영웅 호세 마르티 동상이 세워져 있는 광장 한가운데다.

한편 반체제단체인 쿠바인권국민화합위원회(CCDHRN)는 “당국이 교황의 방문을 앞두고 반정부 시위를 막기 위해 지난 4일 동안 ‘백의의 여성들’ 회원 15명을 비롯해 최소 70명을 구금했다”고 25일 밝혔다. 반체제 인사들은 이번에 교황을 만나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려 하지만 실제 베네딕토 교황을 만날 가능성은 적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교황#베네딕토#요한바오로#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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