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1년]<4>후쿠시마 원전 피해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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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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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방사능 공포… 노인-가축만 남은 ‘유령 마을’

사람의 발길이 끊긴 상점가를 뼈가 앙상한 소와 개들이 돌아다닌다. 고삐에 묶인 채 굶주려 죽은 소들의 뼈와 가죽만 남은 사체가 널브러져 있다….

주민들이 모두 떠난 후쿠시마(福島) 현 도미오카(富岡) 마을은 영화에서 본 유령 마을과 똑같았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까지는 동북쪽으로 불과 10km 거리. 강제피난 지시를 거부한 채 혼자 마을을 지키고 있는 주민 마쓰무라 나오토(松村直登·52) 씨의 도움으로 동아일보 취재팀은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마을 안을 취재할 수 있었다.

전기도 수도도 끊긴 집에서 살고 있는 마쓰무라 씨는 살아남은 마을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일과를 보내고 있다. 그는 “정부에서 곧 돌아다니는 가축을 포획해 도살처분 하겠다고 한다”며 “죽음의 도시가 따로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일시 피난했다 가축을 돌보러 돌아온 그는 이미 피폭 판정을 받은 상태다.

원전사고 1년이 지났지만 후쿠시마 전역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여전하다. 원전을 중심으로 반경 20km 내 강제피난지역(경계구역)은 일부 원전 관련 차량의 출입만 허가된 채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 피해를 당했던 1년 전 모습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경계구역 바깥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정부는 원전 반경 20∼30km 지역을 대상으로 설정한 긴급 시 피난준비구역을 지난해 9월 해제했다. 하지만 일부 노인만 돌아왔을 뿐 대부분 도시는 텅 비어 있다. 비교적 안전하다는 지역에 남아 있는 주민들도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 텅 빈 마을, 노인들만 남아

원전 반경 20km 지점에 설치된 나미에(浪江) 마을의 경계구역 검문소에서는 재해대책법에 따라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지판과 함께 경찰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었다. 검문소 바로 앞에서 측정기로 방사능 수치를 재보니 지상 1m 높이에서 시간당 0.6μSv(마이크로시버트)가 나왔다. 하지만 측정기를 지면에 대자 ‘삐삐삐’ 하는 경보음과 함께 순식간에 수치가 시간당 9.14μSv로 뛰었다. 연간 법적 허용치인 시간당 3.8μSv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주인 잃은 타조… 인적은 없고 방사능 측정기만… 도미오카 마을 주변 농장에서 기르던 타조가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걸어가고 있다(왼쪽), 텅 빈 히로노 마을에 설치된 방사능 측정기(오른쪽).
주인 잃은 타조… 인적은 없고 방사능 측정기만… 도미오카 마을 주변 농장에서 기르던 타조가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걸어가고 있다(왼쪽), 텅 빈 히로노 마을에 설치된 방사능 측정기(오른쪽).
검문소 바로 바깥 마을에서 만난 주민은 “경계구역과 불과 1km 차이인데, 어디는 피난 지역이고 어디는 아니라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노인들만 마을에 일부 남아 있는데 토양오염이 심한 데다 이 지역 농산물이라면 팔리지도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남쪽 히로노(廣野)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인구 5200명이 북적였던 마을은 긴급 시 피난준비구역에서 해제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차역 앞 800m가량 이어진 중심 거리의 상점이 모두 셔터를 내리고 있다. 주택가도 대부분 대문과 창문이 잠겨 있고 유치원과 초중학교도 텅 비어 있다. 피난지에서 집안 정리를 하러 잠깐 들렀다는 가자와 도루(加澤太) 씨는 “현재 노인들만 250명 정도 마을에 돌아와 있다”며 “돌아와도 가게나 병원 등 생활기반시설이 모두 문을 닫아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현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현 전체 인구는 198만814명으로 사고 전보다 4만3587명이 줄었다. 또 전체 인구의 3%인 6만2674명은 주소지만 남겨둔 채 현 밖에서 피난 중이다. 지역경제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지난해 현 전체 쌀 판매량은 전년의 40%에 그쳤다. 1월 실업수당 수급자는 2만300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 이상으로 늘었다.

○ 아이 암보험 드는 엄마들

비교적 안전하다는 지역에 남아 있는 주민들도 불안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하고 있다. 원전에서 60km가량 서북쪽으로 떨어진 다테(伊達) 시에 사는 주부 다케우치 아이(가명·27) 씨는 식사 때마다 세 살짜리 딸의 밥을 따로 짓는다. 농사일을 하는 남편이 직접 재배한 쌀에서 세슘은 검출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불안해 원전에서 좀 더 떨어진 지역의 쌀을 사 먹이고 있다. 딸이 밖에서 노는 시간도 2, 3일에 한 번으로 제한했다. 그나마 현관 앞에서 20분을 넘기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주위 엄마들이 아이들의 암보험을 들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케우치 씨는 “유치원에 같이 다니던 아이들이 지난해 13명에서 올해 2명으로 줄었다”며 “일 때문에 피난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딸만 보면 죄를 짓는 기분이 다”고 말했다.

떠났다고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다. 남편을 남겨두고 다섯 살짜리 아이만 데리고 인근 현으로 이사한 요시다 유코(吉田裕子) 씨는 3년 전 간신히 마련한 자신의 집에 영원히 들어갈 수 없는 게 아니냐며 불안해했다. 그는 “아직도 집 지으면서 생긴 빚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일상이 깨지자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이 늘고 있다. 후쿠시마 시 중앙시민의료생활협동조합은 원전사고 이후 6개월간 불면증 환자가 전년 대비 27%, 고혈압 환자는 같은 기간 13% 늘었다고 집계했다. 반면 진료할 의사는 줄고 있다. 현 병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원전사고 이후 12월까지 현 내 의사 152명이 떠나고 81명이 새로 들어와 모두 71명이 줄었다.

이런 가운데 현재 피난 중이지만 귀향을 결심한 기초자치단체들도 있다. 히라노 마을사무소가 1일 귀촌해 문을 열었고 인근 고리야마(群山) 시에 피난 중인 가와우치(川內) 마을사무소도 26일 고향에 돌아갈 예정이다. 가와우치 마을 엔도 유코(遠藤雄幸) 촌장은 “위험이 남아 있지만 고향이 바로 거기 있기 때문에 돌아가기로 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엔도 촌장의 책상 주변에는 ‘포기하지 않는다’ ‘부흥원년’ ‘결속’ 등의 표어가 붙어 있었다.

미나미소마·나미에·도미오카·히로노·고리야마=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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