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앞치마 두르고 설거지한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0

기자단 만찬서 익살영상 공개… 사진 찍다 실수하는 장면도예산절감-내부개혁 의지 시사

14일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 인근 식당에서 열린 유엔본부 출입기자단 송년 만찬장. 불이 꺼지더니 스크린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사진)이 앞치마를 두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총장 부속실 싱크대 앞에서 직접 설거지를 하고 전화도 받고 문서를 복사한다.

다음 에피소드는 집무실에서 아시아 국가 외교장관과 회담을 마친 직후 자신의 카메라로 자동촬영을 하면서 생긴 해프닝을 담은 것. 자동촬영 시간을 맞춘 뒤 외교장관이 서 있는 자리로 급히 돌아가 기념촬영 포즈를 취하지만 카메라가 터지지 않는다. 몇 차례 실수를 하자 일정이 급한 외교장관은 떠난다. 혼자 남은 반 총장만 뒤늦게 카메라에 찍히는 다소 ‘썰렁한’ 모습을 보면서 좌중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반 총장은 이날 기조연설에 앞서 미리 준비한 약 5분 분량의 익살스러운 동영상을 통해 내년부터 5년간 두 번째 임기를 맞는 포부를 우회적으로 밝혔다. 그는 중간 중간 동영상을 보여준 뒤 자신의 멘트를 곁들이는 식으로 이벤트를 이어갔다.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사진까지 손수 찍는 동영상은 비서진을 줄여 예산 절감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 비록 연출된 것이지만 실제 장관과 기자 등의 협조를 구해 촬영했다고 한다.

동영상에는 또 7월 분리 독립에 성공한 남수단의 살파 키르 마야르디트 초대 대통령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흰 물소가 화면에 등장한다. 컴퓨터그래픽 처리를 통해 흰 물소가 반 총장에게 무엇인가 말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반 총장은 이를 보여준 뒤 청중에게 “이 소가 나에게 주는 조언은 ‘유엔이 너무 커서 움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엔 개혁을 위해 예산 절감부터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영상에서는 반 총장이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려고 상체 누드가 찍힌 사진을 휴대전화로 부인에게 보낸다는 것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주요 20개국(G20) 정상에게 잘못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실제가 아닌 가상으로 만든 것이다. 반 총장은 이 장면이 끝난 뒤 “이제부터는 ‘바깥 외교’보다는 가정에 더 관심을 두겠다”고 말했다. 임기 2기를 시작하면서 유엔 내부 개혁에도 신경을 쏟겠다는 의지로 참석한 기자단은 해석했다.

반 총장은 매년 송년 만찬에서 재치 있는 이벤트와 위트 넘치는 말의 성찬(盛饌)으로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는 포부를 밝혔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 좋아요
    1
  • 슬퍼요
    1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