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 연 오바마, ‘99%’ 편들며 월가 비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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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분노 터졌다… 금융위기 만든 사람들이 개혁 훼방”

미국 월가 시위가 주요 도시로 확산된 가운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6일 “그들의 우려를 이해한다”며 시위대 주장에 일부 공감을 표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일자리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미국인들의 분노가 표출된 이번 시위는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금융개혁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월가 시위에 의견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를 맞고 있고 이로 인해 많은 미국인이 큰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사태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장본인들은 오히려 개혁 노력을 훼방 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 우리는 금융권 및 공화당과 모든 현안을 놓고 싸움을 벌였는데 올해도 이 사람들이 우리더러 개혁에서 후퇴하라고 한다”며 금융권과 함께 공화당을 겨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제안한 4500억 달러 규모의 ‘일자리 창출법안(American Jobs Act)’을 의회가 신속히 통과시켜 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하면서 “의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미국인들이 분노 때문에 그들을 워싱턴에서 추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도 워싱턴에서 열린 ‘아이디어스 포럼’에서 “이번 시위의 핵심은 미국인들이 시스템이 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이로 인해 중산층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 시위가 일어난 지 3주째인 6일 수도 워싱턴에서는 6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DC를 점령하라(Occupy DC)’ 시위가 벌어졌다.

워싱턴 중심가 프리덤 광장에는 오전 9시경부터 시위대가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집회를 마친 후 오후 3시경부터 5, 6개 그룹으로 나눠 백악관, 재무부, 상공회의소 건물과 로비회사가 많이 모여 있는 K스트리트 등으로 가두 행진을 벌였다.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1%의 부자가 99%를 지배하는 미국 사회’라는 의미를 담은 ‘99%’라는 글자가 만들어지도록 시위 대형을 짜서 피켓을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DC 점령’ 시위대 웹사이트에는 ‘프리덤 광장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과 (올 초 대규모 노조시위가 일어났던) 위스콘신 매디슨처럼 만들자’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시위는 별다른 충돌 없이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됐으며 경찰은 주변 교통을 통제할 뿐 시위대에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

워싱턴 시위는 월가 시위와 마찬가지로 여러 단체가 섞여 기업탐욕, 반전, 정부개혁, 빈부격차 등 다양한 구호를 외쳤다. 시위에 참가한 록사나 모아예디 워싱턴 트리니티대 사회학과 교수(55)는 “산 교육을 위해 학생들을 데리고 시위에 참가했다”며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각자 다른 구호를 외칠지 모르지만 ‘현재 미국이 처한 상황에 지치고 화가 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는 각국 언론사들이 상주해 있는 내셔널프레스빌딩 바로 옆에서 진행돼 치열한 취재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위대는 당초 낮 12시경 광장 집회를 마치고 가두행진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취재진을 위해 집회를 연장하기도 했다. 워싱턴 시위대는 9일까지 프리덤 광장 사용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시위는 일단 나흘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워싱턴 외에도 20개 이상의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일부 시위대는 대형 금융회사 건물에 진입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탬파 세인트루이스 휴스턴 샌안토니오 오스틴 솔트레이크시티 내슈빌 테네시 포틀랜드 앵커리지 등 시위가 벌어지는 도시가 계속 늘고 있다. 이들 도시에서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까지 다양한 규모의 시위대가 모여 금융권 개혁과 과도한 빈부격차 해소 및 실업난의 해소를 요구했다.

특히 로스앤젤레스에서는 500여 명의 시위대가 도심에서 시위를 벌이면서 경찰과 일촉즉발의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특히 이 중 10명이 도심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한 지점에 난입한 뒤 객장에 주저앉아 피켓을 흔들고 구호를 외치다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은 6730억 달러짜리 ‘가짜 수표’를 제시하면서 현금을 내놓으라고 주장했다. 문짝 크기의 수표에는 수취인으로 ‘캘리포니아 주 주민 일동’이라고 적었고 발행처는 ‘월스트리트’였다.

다른 한 무리의 시위대는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웨스트우드의 한 은행 임원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뉴저지 주 저지시티에 있는 골드만삭스 건물 앞에서도 50여 명의 시위대가 시위를 벌였다.

노동계의 시위 동참도 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서비스 산별노조인 국제서비스노조(SEIU)는 성명을 통해 시위 동참 의사를 밝혔다. 보스턴 유통산업노조의 스튜어트 애플바움 위원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노동운동은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는데 월가 시위대는 노동운동 단체들이 수년 동안 이끌어내지 못했던 시민들의 관심과 공감을 단시일 내에 끌어냈다”며 “이번 시위가 이 나라의 힘의 불균형을 집중 부각했다”고 말했다.

레이먼드 켈리 뉴욕 경찰국장은 6일 “경찰은 시위대원들이 평화롭게 법을 준수한다면 시위대에 앞으로도 계속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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