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찰’ 美 몸사리고… 佛-英 “총대는 우리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 리비아 공습 ‘군사개입 다극화’ 신호탄

리비아 군사작전이 시작된 19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기자들에게 “(이 전쟁은)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20세기 후반 이래 국제사회의 분쟁지역 군사력 개입을 거의 모두 주도해온 미국으로서는 전에 없는 자세였다. 시사주간 타임은 “미국이 아닌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이라고 평했다. 국제사회 개입 양상의 새로운 선례를 보여주는 이번 리비아 전쟁은 그동안 ‘세계 유일의 경찰국가’를 자임해온 미국이 그 지위를 스스로 마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음을 보여준다.

○ 미국의 계산과 프랑스의 부상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첫 국제 군사 개입 결정인 이번 리비아 공습은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단독행동 대신 국제공조를 특히 중시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미국은 이번 군사작전에서 자국의 역할과 비중이 작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주력하는 분위기다. 오바마 대통령은 19일 “미국이 ‘제한적인(limited)’ 군사행동을 승인했다”며 “미 지상군의 리비아 투입은 없다”고 못 박았다. 클린턴 장관도 미국은 ‘지원자’에 머물 것임을 강조했다.

리비아에 대한 공격은 프랑스와 영국 등 최근 수년간 잠시나마 리비아와 우호 관계를 맺었던 국가들이 주도하는 모양새다. 프랑스는 19일 다국적군 개입을 결정한 주요국 정상회의를 주재한 데 이어 다국적군 가운데 가장 먼저 전투기를 파견해 리비아를 공격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18일 의회 연설에서 “자국민을 학살하는 독재자는 결코 두고 볼 수 없다”며 군사 개입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프랑스를 앞장서게 한 데에는 튀니지와 이집트 민주화 혁명이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 정부는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때 시위진압을 돕겠다면서 마지막까지 독재 정권을 지원하고, 이집트 혁명 때 총리와 외교장관 등이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도움으로 공짜 휴가를 즐긴 것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프랑스가 추구하는 인권 보호와 자유 등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외교에서 외면한 데 대한 국민들의 비난이었다. 언론과 야권에서는 독재자와 적절히 제휴하며 정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온 프랑스 외교 전략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런 와중에 리비아에서 전 세계를 격분케 한 학살이 자행되는데도 미국이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내년 5월 대선을 앞두고 국내 지지율이 극우정당 후보에 밀릴 정도로 바닥을 기고 있는 사르코지가 국면 전환을 노리는 동시에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 주기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의 캐머런 총리도 최근 이집트를 방산업체와 함께 방문했을 때 “민주주의를 빙자한 무기 세일즈 외교를 펼친다”는 비난을 들었다.

○ ‘군사 개입 다극화’ 선례


6·25전쟁 이후 미국은 각 지역의 크고 작은 분쟁에 홀로, 또는 주도적으로 군사 개입을 해왔다. 하지만 압도적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에서 참혹한 패배를 맛본 이후 1980년대 레바논, 1990년대 소말리아에서 잇달아 철수했다. 최근의 이라크 및 아프간전쟁도 엄청난 미군 사상자와 재정적자를 안겨준 채 미국을 수렁에 빠지게 했다.

특히 그동안 중동지역에 대한 군사 개입은 이슬람 세계의 반미(反美) 정서를 유난히 자극했고 이는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카다피 정권의 시민학살을 막는다’는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앞에 나서면 ‘미 제국주의 대(對) 이슬람’의 대결로 본질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오바마 정부가 그동안 이슬람 세계와의 관계복원에 정성을 쏟아온 점도 이번 군사 개입의 전면에 나서기를 꺼린 이유로 보인다. 타임은 “영국 프랑스가 이번 작전을 주도한 것은 미국이 책임을 떠맡기보단 다른 서방국가들이 이를 나눠서 수행할 때 세계가 더 안전해질 것이란 인식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국 일각에선 이번 선례로 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보수성향의 폭스뉴스는 “미국이 우방국들의 뒷마당으로 물러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