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민주화 상징은 30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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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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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사촌-형제 잃고 반체제 운동가로 변신한 테르빌 씨
튀니지 ‘분신 노점상’-이집트 ‘구글 영웅’처럼 혁명 불지펴

무아마르 카다피 철권통치를 백척간두 지경으로 내몬 이번 리비아 혁명은 이달 중순 한 30대 변호사의 연행에서부터 시작됐다.

리비아 동부 벵가지에서 활동해온 인권변호사 페시 테르빌 씨(39·사진)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전 대통령의 사퇴 발표(지난달 11일) 직후 20여 명의 무장 정보국 직원에게 연행됐다. ‘유언비어’를 퍼뜨린 혐의였다. 이집트 혁명에 놀란 리비아 보안당국이 사전단속 차원에서 연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항의해 15일 시민들이 경찰서로 몰려갔고, 테르빌 씨는 이날 밤 석방됐다.

하지만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강경대처가 시민들의 분노를 촉발시키면서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돼 현재의 리비아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리비아 시위가 2주째로 접어들면서 리비아 국민들과 세계 언론들은 테르빌 씨를 이번 리비아 혁명의 상징적 인물로 주목하고 있다. AFP는 27일 “분신자살로 튀니지 ‘재스민 혁명’의 불을 지폈던 대졸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 씨와 이집트 혁명의 상징이 된 와엘 고님 구글 임원(31)에 이어 테르빌 씨가 리비아 시민봉기의 얼굴이 됐다”고 소개했다.

평범한 변호사였던 그는 1996년 1200여 명의 죄수가 학살된 트리폴리 인근의 아부 슬림 교도소 폭동 진압사건을 계기로 반체제 변호사가 됐다. 이 사건으로 사촌과 형제도 잃은 그는 이 사건을 맡은 뒤 당국에 7번이나 체포됐다. 그는 “당시 죄수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요구했지만 정권은 3시간 만에 이들을 죽였다”고 주장했다.

현재 벵가지에 있는 테르빌 씨는 “나는 카다피 원수가 생포돼 공정한 재판대에서 정의와 마주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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