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내전사태]카다피에게 석유는 ‘최고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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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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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시설 파괴명령’으로 국제사회-反카다피부족 동시 협박

최후의 순간까지 권좌를 지키겠다고 다짐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23일 석유 생산 시설 파괴 명령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그가 ‘석유 무기화’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중동문제 전문가 로버트 베어 씨는 시사주간지 타임에 기고한 글에서 “카다피가 보안군에 석유 시설 파괴를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며 “이런 명령은 ‘나를 따르지 않으면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반(反)카다피 진영에 선 부족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석유시설 파괴는 자신을 압박하는 국제사회를 향한 협박용이기도 하다.

석유 시설에 대한 공격이나 파괴가 시작됐다는 구체적 징후는 아직 없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린 카다피 원수가 2003년 이라크전쟁과 1991년 걸프전쟁 당시 이라크를 흉내 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라크전 당시 사담 후세인은 다국적군에 맞서 유정 파괴를 준비했고 실제 이라크 남부 유정에 화염이 치솟았다. 1991년 걸프전 때는 쿠웨이트에서 후퇴하면서 750개의 유정에 불을 질러 250일간 하루 600만∼800만 배럴의 원유가 불탔다. 석유 연소로 발생한 오염물질이 동식물을 고사시켰고 사람들을 질식시켰다. 이라크군이 300개 이상의 유정에서 유출한 기름은 쿠웨이트 수원의 30%를 오염시켰고 바다 생태계를 파괴했다.

이에 앞서 22일 카다피 원수는 대국민연설에서 “리비아는 나의 조국이고 나는 내 조상의 땅에서 순교할 것”이라며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맞서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특히 반정부 시위를 ‘서방의 농간’ ‘마약과 돈에 취한 어린 것들의 철없는 망상’ 등의 표현으로 비난했다. 외세가 선동한 부당한 침략으로 규정한 것이다. 연설 장소를 ‘반미 항전’의 상징인 자신의 옛 관저로 택한 것도 공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됐다. 75분간 연설하는 동안 그의 뒤에는 미군 폭격으로 폐허가 된 트리폴리 옛 관저의 음산한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이곳은 1986년 독일 베를린 미군 디스코텍 폭탄 테러를 리비아 소행으로 판단한 미국의 보복 폭격으로 당시 생후 15개월 된 그의 수양딸 등 41명이 숨진 곳이다. 카다피 원수는 자신이 1975년 쓴 ‘그린 북(Green Book)’의 문구들을 손가락으로 일일이 짚어가며 반정부 시위대원들의 처벌을 공언했다. 그린 북은 카다피가 리비아의 민주주의와 경제원칙, 정치철학에 대한 견해를 집대성해 만든 책으로 헌법과 같은 지위를 갖고 있다.

그는 이어 지지자들에게 “집을 떠나 은신처에 있는 그들(시위대)을 공격하라”고 선동했다. 리비아 내 종족 간 갈등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권좌를 지탱해온 통치 기술을 복습하는 셈이다. 시위대는 “종족 학살(genocide)을 부추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카다피는 42년 동안 자신에게 우호적인 부족에게는 오일머니를 나눠주며 충성을 약속받고 위협이 될 만한 부족은 매수하거나 소외시켰다. 이 때문에 리비아에는 카다피 원수에 대항할 만한 통일된 야권 세력이 전무하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아프리카프로그램 제니퍼 쿡 소장은 “그는 자신의 부족에서도 몇몇 주요 인사들에게 번갈아 권력을 쥐여주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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