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이민 악명’ 이탈리아에 다문화 희망 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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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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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체市 ‘이민자와 공생’ 프로그램 유럽이 주목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주 리아체 시의 한 초등학교. 몇 년 전 폐교했던 이 학교는 늘어난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들로 다시 문을 열었다. 학생 대부분이 소말리아나 알바니아, 이라크 등에서 온 아이들이다. 사진 출처 BBC 홈페이지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주 리아체 시의 한 초등학교. 몇 년 전 폐교했던 이 학교는 늘어난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들로 다시 문을 열었다. 학생 대부분이 소말리아나 알바니아, 이라크 등에서 온 아이들이다. 사진 출처 BBC 홈페이지
은은한 올리브 향이 감도는 언덕. 창밖엔 이오니아 해의 쪽빛 물결이 넘실거린다. 그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아이들의 강독 소리. 지중해식 건물이 아니어도 미뤄 짐작되는 흔한 이탈리아 시골학교의 풍경이다.

하지만 이 학교는 뭔가 색다르다. 교실을 채운 학생들의 생김새가 낯설다. 초롱초롱한 눈빛에 까무잡잡한 피부. 대부분 소말리아와 이라크 등에서 온 아이들이다. 오히려 이탈리아 출신은 몇 명 없다. 한참 수업을 지켜보던 도메니코 루카노 시장이 흐뭇하게 입을 뗐다.

“저 아이들이야말로 이탈리아의 희망입니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주의 소도시 리아체 시가 최근 유럽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쓰러져 가던 한 시골마을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유럽의 미래(City of European Future)’란 칭송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실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히는 빈민지역인 칼라브리아 주에서 리아체 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때 주민들이 줄줄이 떠나며 인구가 1700명 아래로 감소했을 정도였다. 학교는 차례로 문을 닫았고, 수백 채의 빈집이 팔리지 않은 채 먼지가 쌓여갔다.


하지만 2004년 루카노 시장이 취임하며 리아체 시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갈수록 심각해지던 노동력 기근을 난민과 외국인 노동자의 유치로 상쇄시켜 나갔다. 이탈리아는 최근 반(反)이민 정서가 드높던 유럽에서도 가장 인종차별 성향이 강했던 나라. 루카노 시장의 정책이 입소문을 타며 이탈리아 각지를 떠돌던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의 정착을 위해 루카노 시장은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부를 설득해 이민자 통합프로그램 비용을 끌어왔다. 어차피 비어있던 집의 주인에게 연락해 무상임대를 얻어냈다. 외국인 자녀들을 위한 학교와 직업훈련소도 문을 열었다. 지역주민과 외국인 노동자가 함께 일하는 농장이나 공장은 감세 등 혜택을 지원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타 지역에서 따돌림받던 난민들은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성실한 시민으로 변모했다. 지역산업이 활기를 띠자 주민들도 이들을 보는 시각이 따뜻해졌다.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유리 세공 가게에서 일하는 20대 이레나 씨는 “피부색이 달라도 가난에 고생했던 공통점 덕분인지 금방 친해졌다”며 “고향을 떠났던 친구와 친척들도 돌아오고 싶어 한다”며 기뻐했다.

물론 아직 난관은 남아있다. 가난한 주민을 상대로 위세를 떨치던 지역 마피아들이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지난해 말 시장 사무실에 날아든 총알 2발도 이들이 저지른 위협사격이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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