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알아야 전략 세운다]<4>중국을 만만하게 보지 마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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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관계의 중핵은 경제였다. 특히 정치 분야는 냉탕 온탕을 왔다 갔다 했지만 무역을 포함한 경제협력은 해가 갈수록 상호 의존도가 높아져왔다. 중국은 2002년(홍콩 포함)을 기점으로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자 최대 투자대상국으로 떠올랐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들어 11월까지 우리나라 수출의 30.3%(홍콩 포함)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외투자의 43.4%(신규법인 수 기준)가 중국행이다.》

[‘세계의 시장’ 탈바꿈] 中, 금융위기 계기로 내수위주 성장전략 모색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 기업의 중국 공략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신하면서 우리의 대중국 경제협력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양국 기업이 협력해 세계 시장을 노렸다면 이번엔 양국 기업이 상호 경쟁하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협력 모델을 다시 찾아야 한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 또다시 새로운 도전 과제가 놓인 셈이다.

○ 4만여 한국 기업, 만리장성을 넘다

한국 경제의 중국 진출에는 4만여 기업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수교 이후 초창기에는 한국의 기술과 자본, 중국의 저임금과 풍부한 노동력이 상호 결합하면서 많은 중소제조업체가 만리장성을 쉽게 넘었다. 일부 기업은 좌절하고 보따리를 싸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대기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삼성그룹은 최근 인사에서 중국 본사 총책임자로 강호문 부회장을 임명했다. 올해 중화권에서 5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삼성그룹이 중국을 단순한 생산기지나 판매시장이 아닌 ‘제2의 본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이징(北京)자동차와 합작해 2002년 중국에 진출한 현대자동차는 7년 만인 지난해 중국 4대 자동차 메이커로 우뚝 섰다. 지난달에는 베이징에 연산 40만 대 규모의 제3공장 건설에 들어가 중국에서 연산 100만 대 생산체제 구축에 나섰다.

세계 액정표시장치(LCD)의 양대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지난달 중국 정부로부터 LCD 공장설립 허가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내년까지 중국 장쑤(江蘇) 성 쑤저우(蘇州)에 30억 달러를 투자해 7.5세대 LCD패널 공장을, LG디스플레이도 2012년 가동을 목표로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에 40억 달러를 투자해 8세대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중국 내수를 겨냥한 진출 기업의 활약도 눈부시다. CJ그룹은 중국 상하이(上海)미디어그룹(SMG)과 합작투자로 홈쇼핑업체 둥팡(東方)CJ를 세워 중국 내 매출 1위 업체로 등극했다. 의류로 중국을 공략한 이랜드는 진출 16년 만인 올해 누적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오리온의 제과 등도 중국 시장의 별로 우뚝 섰다.

[한국기업 도전과 응전] 가공무역 50% 넘어… 서비스-SOC 진출해야

○ 5∼10년 내다보고 현지화 노력해야


하지만 중국의 경제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중국 진출 전략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중국은 금융위기를 계기로 수출과 투자 주도의 성장전략 대신 소비에 기반을 둔 새로운 성장방정식을 모색하고 있다. 단순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도 에너지 환경 등 첨단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임금 상승과 노동환경 변화로 저임금 생산기지의 이점도 사라져 우리 중소기업이 버티기 어려워졌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대중국 투자도 생산기지에서 소비시장 중심으로 질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은 대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의 대중 수출 가운데 중국의 해외수출에 사용되는 원자재를 수출하는 가공무역의 비율이 여전히 50%를 넘고 있다.

앞으로 우리 기업은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글로벌 기업 및 중국 현지기업과의 힘겨운 싸움을 피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비해 현지 공략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박근태 중국한국상회 회장(CJ중국본사 총괄 부사장)은 “중국 내수시장화는 한국기업이 나야가야 할 방향으로 5∼10년 앞을 보고 브랜드 빌딩을 하고 현지화에 노력해야 한다”며 “아직 시장 개방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서비스업과 문화사업의 진출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시장 진출을 꿈꾸는 한국 기업들에 △중국은 한국과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중국의 지역별 소비자와 시장 유통구조를 이해하며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우수한 현지인력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의 도시화 과정에서 창출되는 사업 기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곽복선 KOTRA 중국통상전략연구센터 수석연구위원은 “기존의 권역별 시장 진출 방식에서 특정 도시를 타깃으로 한 미시적 시장 접근 전략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도시별 도시 확대에 따른 프로젝트성 사업, 오염물질 처리·청정개발체제(CDM) 등 환경과 에너지 인프라 구축 등에서 진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노력 못지않게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도 절실하다. 중국의 정부 주도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 또 내수시장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에 대비해 대금 회수 및 지적재산권 등의 다양한 분쟁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이민용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중국의 법체계 미비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국 시장에서 법적 분쟁 발생 시 우리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분쟁조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 법 관련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직분업→수평협력] 양국 전기車등 신사업 겹쳐… 동반성장 기회로

○ 경쟁자인 동시에 동반자로


중국이 경쟁자인 동시에 동반자로 등장하면서 양국 간 협력 분야와 형태에 있어서도 변화가 요구된다. 양국이 아직 세계 시장을 선점하지 못한 신(新)산업 분야의 위험과 불확실성에 공동 대처하면서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

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연구팀장은 “중국이 대대적으로 육성코자 하는 신에너지, 첨단장비, 환경보호 등 7대 전략적 신흥산업은 한국의 신성장동력 산업과도 상당수 중복된다”며 “미래 산업에서 중국과의 경쟁에 대비함과 동시에 다양한 협력사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외국과의 공동연구기구 설립 △기술 시범사업에 외국 기업의 참여 장려 △국제표준 제정의 협력 △해외에서의 자금조달 △해외 과학기술 및 산업단지의 설립 등을 협력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한중 협력은 기존의 수직분업 추구형의 투자협력 중심에서 기술 및 표준화 협력 등을 포함한 포괄적 수평협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전기차 등 그린카 분야의 경우 정부 주도로 한중 공동 프로젝트를 수립하고 양국 기업, 학계 연구소가 참여하는 협업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차이나머니 820억달러 해외투자… 한국엔 6억달러 그쳐 ▼

중국의 막강한 자본력이 한국 시장을 적시고 있다. 2조5000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액과 풍부한 유동성을 기본으로 주식과 채권 등 금융시장은 물론이고 부동산 관광 외국인직접투자(FDI)까지 전방위로 밀려오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중국 현지에 공장을 짓는 등 중국을 투자대상으로만 여겨왔다. 하지만 중국의 지갑이 두둑해지면서 자본의 흐름도 양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에 어떻게 진출할 것인가 못지않게 중국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가 중요해진 것이다.

중국 자금은 국내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금융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까지 중국의 채권 순투자(순매수―만기상환) 금액은 4조2720억 원으로 지난해 1조8726억 원의 두 배가 넘는다. 관광수입도 크게 늘었다.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134만 명에서 올해 10월까지 162만 명으로 급증했다. 제주도 리조트 등 부동산 투자에도 중국 부호들이 몰려들면서 ‘제주도를 통째로 사들이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까지 나왔다.

하지만 중국 자본의 국내 직접투자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올해 10월까지 중국의 해외투자 규모가 820억 달러인 데 비해 우리가 유치한 금액은 6억6000만 달러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용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산업구조 조정 등을 위해 양질의 중국 자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기술은 있지만 자본이 부족한 한국 중소기업이 중국의 투자를 받아 회생할 수 있다”며 “좋은 중국 기업을 발굴해 국내 증시에 상장시키면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선진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투자유치 확대를 위해서는 먼저 중국 자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부터 해소해야 한다. 상하이(上海)자동차의 쌍용자동차 인수와 철수 과정에서 나온 ‘먹튀’ 논란 등 정서적 거부감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중 기업 간 교류를 통한 파트너십 조성도 시급하다.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도 필수적이다. 3000만 달러 이상의 해외투자는 중국 정부의 허가 사항이라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뒤늦게 우리 정부도 중국 투자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지식경제부는 지난달 중국 경제 관련 실무조직인 ‘중국협력기획과’를 발족했고 5월에는 KOTRA 산하에 ‘차이나데스크’라는 중국투자유치 전담조직을 꾸렸다.

변종립 지경부 투자정책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투자처였던 선진국의 투자 여력이 급감하면서 중국 자본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며 “관광 레저 문화 등 서비스산업과 태양광 등 신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유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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