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산지 성폭행 ‘그날 밤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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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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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유럽 언론, 스웨덴 경찰 보고서 공개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를 옥죄려는 정치적 음모냐, 성범죄에 대한 정당한 사법절차냐.’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 씨(39·사진)가 성폭행 등 혐의로 유럽 사법 당국과 법정 공방을 벌이면서 ‘그날 밤의 진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은 18일 스웨덴 경찰이 어산지 사건을 조사하면서 작성한 68쪽의 보고서를 입수해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유출된 보고서에는 어산지 씨가 올해 8월 스톡홀름에서 미스 A(31), 미스 W(25)라는 두 명의 여성을 만나 성관계를 갖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에 따르면 좌파 운동가로 알려진 A 씨는 어산지 씨의 스웨덴 강연을 주최한 사민당 내 조직에서 일하면서 그를 만났다. A 씨는 출장 온 그에게 자신의 집을 숙소로 제공했고 8일간 함께 지내며 성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이때 어산지 씨가 목걸이와 옷을 거칠게 벗기며 불편한 성관계를 요구했고 콘돔을 집으려고 손을 뻗치는 A 씨의 팔과 다리를 잡아 눌러 이를 막았다는 것.

스톡홀름 박물관에서 일하는 W 씨는 평소 위키리크스 활동을 강하게 옹호했고 주변에도 “(언론에 보도된) 어산지가 용감하고 존경할 만한 흥미로운 남자”라고 말해 왔다고 한다. 그는 어산지 씨의 강연 행사 후 저녁식사 때 옆자리에 앉았고 급속히 친해지자 그를 자신의 집에 데려갔다. 콘돔을 사용해 성관계를 한 뒤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어산지 씨가 콘돔을 쓰지 않고 자신을 상대로 다시 성관계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W 씨는 경찰에 진술했다.

두 여성은 W 씨가 A 씨에게 어산지 씨의 행방을 묻는 과정에서 같은 경험을 하게 된 것을 알았다고 한다. 에이즈 등 성병 가능성을 우려한 두 여성은 어산지 씨가 성병 테스트를 거부하고 떠나버리자 상담을 위해 경찰서를 방문했고 상담한 여성 경찰관이 이를 성범죄 혐의로 판단해 상부에 보고했다.

A 씨가 사건 이후에도 어산지 씨와 한 집에 묵으며 파티에 같이 참석한 점과 W 씨가 성관계를 맺은 다음 날 아침식사를 함께 한 점, 사건 직후 고소 의사가 없었던 점 등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은 “스웨덴에서는 30년 넘는 여권 투쟁을 통해 확립된 여성의 권리보호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어산지 씨의 체포 결정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클라에스 보그스트롬 변호사는 “스웨덴 법에서 여성의 의사에 반해 콘돔 없이 성관계를 맺는 행위는 성적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강간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에서 이는 징역 4년까지 처해질 수 있다.

최근 보석으로 풀려난 어산지 씨는 18일 “나와 (위키리크스의) 동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최대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위키리크스에 대한 금융거래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새로운 ‘비즈니스 매카시즘’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한편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미 정부가 어산지 씨에게 간첩법을 적용하려는 시도와 관련해 이런 사건에서 정보 공개자를 처벌한 전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과거 사례들을 검토한 결과 기밀정보를 외국 정보기관 등에 건넨 사람에게는 간첩법 적용이 가능하지만 이를 받아 보도(폭로)한 자에게는 적용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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