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재해 봤지만 이런 참상 처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파키스탄 大홍수
반기문총장 방문

파키스탄 서북부에서 고철 줍는 일을 하며 하루 1파운드(약 1850원)를 버는 디다르 굴 씨(60). 그는 최근 마을을 휩쓴 대홍수로 두 딸 나지아(25)와 살마(24)를 한꺼번에 잃었다. 굴 씨는 물이 목까지 차고 올라온 집에서 막내딸은 구했지만 모든 가족을 살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급류에 휩쓸린 살마를 구하러 언니인 나지아가 손을 뻗쳐봤지만 수마(水魔)는 결국 둘을 모두 삼키고 말았다.

2주 전 시작된 파키스탄 대홍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까지 1600명이 목숨을 잃었고 30만 채의 집이 파괴됐다. 또 파키스탄인 2000만 명, 전 국토의 4분의 1이 홍수 피해를 입었다. 수십만 명이 죽은 지난해 아이티 대지진이나 2004년 인도양 지진해일(쓰나미)에 비해 사망자 수는 아직 적은 편이다. 하지만 현지에 나간 국제기구 관계자나 외신기자들은 “그 참상이 지금까지의 어떤 자연재해에 못지않다”며 “사상자 수는 갈수록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5일 파키스탄 현지를 방문해 “내 가슴이 찢어지는 날”이라며 “지금까지 많은 자연재해를 목도했지만 이런 재해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유엔은 성명을 내고 “수재민의 식량과 의약품 공급을 위해 4억6000만 달러를 긴급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 이 가운데 20%만 실제 지급됐다”고 밝혔다. 유사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는 “이 재앙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국제사회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다”고 호소했다.

수해로 인한 아동 피해도 크다. 이날 외신들은 수해지역으로 통하는 교통이 두절돼 식량 공급이 끊겨 파키스탄 어린이 5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압둘 사미 말리크 유니세프(UNICEF) 대변인은 “600만 명의 어린이가 수해로 피해를 입었다”며 “어린이들이 오염된 물을 마시면서 설사와 콜레라 말라리아 등 질병에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구호 약속은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는 14일 32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미국 영국 호주도 최근 지원 의사를 나타냈다. 반 총장도 “구호단체 종사자들의 파키스탄 입국을 위한 비자 문제가 해결됐다”며 본격적인 구호활동이 시작될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 전달되는 구호물품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16일 AP통신은 전했다. 이재민 수천 명과 함께 살고 있는 무크타르 알리 씨(45)는 “우리는 거지와 다름이 없다”며 “제일 최근에 받은 식량은 어제 작은 밥 한 덩이였는데 그걸 15명이 나눠 먹었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