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U제복이 존경받는 사회]英 초등학교에 ‘충무공 액자’ 걸린 까닭은…

동아일보 입력 2010-04-28 03:00수정 2010-04-2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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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연평해전서 전사한 故 윤영하소령 다니던 모교
“훌륭한 장교돼 나라 지켜”… 해군 2005년 방문해 기증
2005년 영국 래치미어 초등학교를 방문한 최윤희 당시 해군순항훈련함대 사령관이 이 초등학교 교장에게 이순신 장군을 형상화한 액자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해군본부
기자는 2008년 8월부터 1년간 영국 런던대 방문연구원으로 런던에 체류했다. 연수 시작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딸은 런던 킹스턴 구의 래치미어 초등학교 6학년으로 편입했다.

영국 학교에서 며칠을 보낸 뒤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우리 학교에 거북선과 이순신 장군 액자가 있어요. 굉장히 커요.”

영국 학교에 무슨 거북선과 충무공 액자가 있을까…. 다음 날 학교에 가보았다. 복도 한가운데 거북선과 충무공을 담은 큰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림이 아니라 종이접기로 모자이크한 것이었다. “어떻게 저런 액자가 걸려 있지?”

궁금증은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래치미어 초등학교’를 검색한 뒤 풀렸다. 래치미어 초등학교는 제2차 연평해전(서해교전)에서 전사한 고 윤영하 소령이 어린 시절 무역업을 하던 부친을 따라 영국에 살면서 다닌 학교였다. 윤 소령은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에 29세의 나이로 숨졌다. 전사 당시 그는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정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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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르해전 승전 200주년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한 한국 해군순항훈련함대가 래치미어 초등학교를 찾았다. 군악대 연주와 태권도 시범 등을 펼친 뒤 거북선과 이순신 장군이 담긴 액자를 기증했다. 당시 이 학교 교장은 “20여 년 전 우리 학교를 다닌 어린 학생이 훌륭한 장교가 돼 북한과의 교전에서 숨졌고, 그를 기리기 위해 한국 해군이 이곳을 찾았다는 것은 놀랍고 극적인 이야기다.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알게 된 기자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윤 소령은 1996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뒤 자기소개 글에서 “(영국 생활 당시) 처음 하는 외국생활이었지만 급우들의 따뜻한 정을 느꼈다”고 적었다. 기자의 딸도 친구들 모두가 학급 유일의 동아시아인인 자기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고 했다. 고 윤 소령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씩씩한 군인이었겠지만 순해 보이는 눈을 보니 내성적인 면도 있었을 듯했다. 서울에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했던 딸은 영국에서 학교에 뛰어들어가곤 했다. 고 윤 소령도 영국 초등학교 생활이 즐거웠던 모양이었다.

한국 해군이 래치미어 초등학교를 찾았던 2005년에 딸아이의 동급생들은 2학년이었다. 한국이라면 유치원을 갓 졸업했을 나이니 당시 행사에 대해서는 이후 까맣게 잊었을 것이다. 그래도 당시 고학년이었던 아이들은 꽤 오랫동안 낯선 나라에서 온 선배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영국은 해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나라다. BBC가 매년 전국에 생중계하는 ‘프롬스’ 콘서트는 ‘영국이여, 파도를 지배하라, 너는 결코 노예가 되지 않으리라’라는 노래를 전국 곳곳에 모인 청중 모두가 합창하면서 절정을 이룬다.

그러나 고국에서 고 윤 소령의 영혼은 한동안 그다지 기쁘지 않았을 듯하다. 윤 소령을 비롯한 제2 연평해전 전사자 6명의 해상위령제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당시 정부의 자세 때문에 3년이 지나서야 열렸다. 당시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도 천도법회가 열렸지만 정부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2007년에는 이재정 당시 통일부장관이 제2 연평해전에 대해 “방법론에 있어 한 번 더 반성해봐야 할 과제”라고 말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추모식은 교전 6년 뒤인 2008년에 와서야 정부 주관행사로 제자리를 찾았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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