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성장기지 ‘경제자유 구역’]<3>中 경제특구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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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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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금융 무장한 ‘중국의 3龍’… 경쟁력지수 3-5-6위 포진

세계 시장변화 발빠른 대응… 첨단업종 전략적 지원 육성
지식기반 산업 거점 ‘우뚝’
행정구 통폐합-협력 강화… 경쟁력 지수 한국3곳 압도

이달 8일 중국 광둥(廣東) 성 선전(深(수,천)) 시 룽강(龍崗) 구 바오룽(寶龍) 지역. 중국이 자랑하는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이 투자해서 유명해진 자동차업체 비야디(BYD)가 들어선 중국의 대표적인 신흥 공업단지다. 단지 내부에서는 중국 산업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뿌연 연기를 내뿜는 공장 굴뚝도 보이지 않았다. 공업단지라기보다는 연구단지라는 설명이 어울렸다.

한국 기업으로 2008년 3월 이곳에 입주한 잘만테크 중국법인 장영기 부총경리는 “유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고 선전 시가 인정하는 핵심 기술을 보유한 회사만 이곳에 입주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중국의 경제특구가 ‘세계의 공장’에서 첨단 지식기반 산업의 글로벌 거점으로 진화하고 있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모니터그룹이 세계 20개 경제자유구역(FEZ)의 경쟁력지수(FCI)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중국의 3대 경제특구는 상위 6위 내의 선두권에 포진하며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 등 한국의 FEZ 3곳을 압도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이달 초 선전, 상하이 푸둥, 톈진 빈하이 등 중국의 3대 경제특구를 돌며 첨단기술, 서비스업, 금융 등의 지식기반 산업으로 무장하고 있는 중국 경제특구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첨단산업 유치에서도 정면승부 불가피

1980년 중국 최초로 경제특구로 지정된 선전은 과감한 체질 개선을 하고 있다. ‘선전 스피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의 자본과 기업을 빨아들이며 1980년부터 2005년까지 연평균 27%씩 성장했지만 2006년 이후 성장세가 10%대로 둔화됐다.

선전은 재도약을 위해 인터넷, 바이오, 신에너지 등 3개 산업을 선정하고 과감한 투자를 시작했다. 선전경제특구 업무를 관할하는 선전시과기공무정보화위원회 가오린(高林) 부주임은 “향후 5년간 인터넷, 바이오, 신에너지 산업에 각각 5억 위안씩 모두 15억 위안을 투자해 5년 이내에 3개 업종의 경제 규모를 6000억 위안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의 투자 유치에 주력하는 한국의 FEZ와 앞으로 정면 승부가 불가피하다.

상하이 푸둥은 이미 국제 금융허브로 변신했다. 500여 개 글로벌 금융회사, 4000여 개의 회계법인이 푸둥에 둥지를 틀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난해 50여 개 기업이 새로 들어섰다. 푸둥의 결실은 주변 지역과 분업 체계를 형성하는 성장의 ‘확산 효과(Spill-over effect)’로 나타나고 있다.

장쥔(張軍) 상하이 푸단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하이의 제조기업은 주변의 쑤저우, 항저우 등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를 금융, 첨단업종의 기업이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상하이 금융시장의 총거래액을 80조 위안(1경2087조 원)으로 잡고, 금융업 비중도 전체 산업의 11%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 업종별 인센티브로 전략산업 육성

올해는 중국이 선전을 시작으로 경제특구를 설립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강산이 세 번 바뀌어도 중국의 경제특구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장의 변화를 읽고 이에 맞춰 발 빠르게 대처하는 유연함 때문이다.

초기 중국 경제특구의 전략은 값싼 노동력과 저렴한 용지 등 생산요소의 경쟁력을 앞세워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인 혜택을 제공하며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끌어 모으는 방식이었다. 선전은 2007년까지 국내 기업들엔 33%의 기업소득세를 부과한 반면 특구 내 외국 기업에는 15%의 낮은 세율을 적용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세계 500대 기업 중 166곳이 선전에 진출했다.

하지만 중국 로컬 기업들의 성장과 더 저렴한 생산 요소 경쟁력을 보유한 후발주자들이 추격을 시작하자 과거의 ‘중국 모델’은 한계에 부닥쳤다.

선전은 2008년 역차별 논란을 불러온 외국 기업에 대한 일률적인 세제 감면 혜택을 없앴다. 그 대신 업종별 인센티브 차별화로 전략을 바꿨다. 무분별한 인센티브를 지양하고 전략적 목표로 선정한 첨단 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국내건 외국 기업이건 핵심 기술을 보유한 첨단 기업에 대해서는 15%의 기업소득세를 적용하고, 최고 1500만 위안 규모의 장려금을 지급한다.

톈진 시도 외국기업에 대한 파격적인 혜택을 줄이고 있다. 김흥수 톈진 한국상회 수석사무국장은 “초기엔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무조건 특구 내 입주가 허용됐지만 지금은 톈진 시가 원하는 업종과 규모가 아니면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 경제특구는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있다. 이번 FCI 조사에서 중국의 땅값과 임금 등 생산요소의 비용은 인도 등 후발 주자보다 높았지만 기업의 집적도와 배후시장 등 생산요소의 집적도 경쟁력에서는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5위권을 형성하며 달라진 면모를 보였다.

○ 연계 협력으로 광역 경제특구로 변신


중국 3대 경제특구는 입지와 요소는 물론이고 정책·운영 경쟁력에서도 한국 FEZ를 압도했다. 인근 지역과 연계하거나 통합해 경제특구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빈하이 신구는 올해 1월 기존 3개 행정구를 통폐합했다. 이를 총괄하는 빈하이신구관리위원회도 출범했다. 신광용 톈진 난카이대 경영학과 교수(톈진 한인상회 부회장)는 “원스톱 행정서비스를 위해 관리위원회에 중앙 정부의 모든 기능별 담당자가 파견됐다”고 말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처리할 문제를 관리위원회에서 한 번에 처리하게 돼 효율성이 높아졌다.

중국의 경제특구들이 주변 도시와의 연계 협력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모습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FCI 평가 결과 인접시장 연결성 항목에서 푸둥이 1위를 차지했다. 선전과 톈진도 각각 4위와 8위로 평가됐다.

선전은 홍콩과 함께 지난해 독일에서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다음 달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이 행사를 연다. 선전과 홍콩이 가진 강점을 하나로 연계해 제시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도시끼리의 기능적 통합도 빨라지고 있다. 2015년에는 고속철도 개통을 통해 광둥 성 주장(珠江) 강 삼각주의 9개 도시와 홍콩, 마카오는 1시간 이내에 접근이 가능한 ‘원 아워 존(1 hour zone)’으로 탈바꿈한다. 이들 도시 내에서 공동으로 통용되는 소액결제용 전자카드 도입도 검토 중이다.
▼“손과 발로 일군 선전 이젠 두뇌가 이끈다”▼
중젠 선전大 특구연구센터장


“과거 선전의 경제는 손과 발로 일궜다. 이제는 두뇌로 선전의 미래를 열겠다.”

중젠(鐘堅·사진) 중국 선전대 중국경제특구연구센터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전이 그동안 저렴한 노동력의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노동자)으로 전통 제조업을 키웠지만 앞으로는 수백만 명의 대학 졸업생을 활용해 첨단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육성하겠다는 것.

1983년 설립된 선전대 중국경제특구연구센터는 중국 교육부가 설립한 국가 연구기관이다. 30여 명의 박사급 인력이 중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경제특구의 장단점을 연구하고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중 교수는 올해로 경제특구 30주년을 맞은 선전이 향후 발전시켜야 할 업종을 묻자 주저하지 않고 금융, 물류, 문화산업 등 서비스업종을 꼽았다.

그는 “1인당 소득이 1만3000달러 수준인 선전의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서비스업 비중을 현재 53%에서 70%대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선전은 지난해 지역내 총생산(GRDP)에서 금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4%로 높아지고 제조업 비중은 50% 밑으로 떨어지는 등 경제구조의 개편이 진행되고 있다.

“외국 기업들이 단순한 조세 혜택만 보고 선전에 오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성장 가능성과 투자 대비 수익이 높고 중국의 다른 도시보다 우수한 금융, 물류, 인적자원 등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중 교수는 선전이 외국 기업들에 제공하는 혜택을 점차 줄이고 있지만 외자유치 규모는 줄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선전 시가 유치한 외국인 투자계약액은 35억6000만 달러에 이른다.

“중앙정부가 선전 시 정부에 특구 운영에 관한 주도권을 줬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었다.”

그는 “선전 경제특구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정부의 유연한 정책”이라며 “중국 경제특구의 성공에는 외국 기업뿐 아니라 중국 본토 기업들의 성장도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배극인 미래전략연구소
신성장동력팀장
▽미래전략연구소
조용우 박용 한인재 하정민
김유영 신수정 기자
▽편집국
박희제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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