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구소련독립국 ‘과도한 민족주의’ 홍역

  • 입력 2009년 8월 26일 02시 55분


‘곰돌이 푸’ 그렸다고 처벌… 적대국 노래 좋아한다고 조사

옛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와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에서 민족분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국가가 직접 나서 ‘과도한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특히 이들 국가는 국민의 애국주의를 강요하거나 소수민족의 표현의 자유까지도 불법으로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 나치 복장의 곰돌이 푸(Pooh)는 불법 표현물

러시아 법무부는 최근 나치 복장의 디즈니 만화 주인공 ‘곰돌이 푸’와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그림을 ‘극단주의 표현물 리스트’에 올렸다. 이 리스트는 러시아 내 소수민족 극단주의 단체의 반(反)러시아 선전활동을 막기 위해 2002년에 제정한 법에 따라 작성된 것이다. 나치를 연상시키는 철십자 완장을 찬 곰돌이 푸나 푸틴의 그림을 제작하거나 갖고만 있어도 처벌을 받는다. 개인은 최고 벌금 3000루블(약 12만 원)이나 구류 15일, 단체는 최고 10만 루블(약 390만 원), 활동정지 90일형을 받는다.

이번에 새로 리스트에 오른 414개 표현물 중 곰돌이 푸처럼 선정 사유가 모호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꽤 많다고 모스크바 타임스는 23일 전했다. 리스트에는 ‘십자가가 들어간 깃발’도 있는데, 이러면 스위스 국기나 러시아 정교회 깃발도 불법 표현물에 해당된다. 극단주의 활동을 추적·감시하는 민간단체 소바의 갈리나 코제프니코바는 이 리스트를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혹평하면서 “사법당국이 적발 건수를 올리기 위해 죄 없는 시민을 극단주의 범죄인이라며 체포하는 데 오용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 적대국 노래를 좋아하면 안돼

아제르바이잔의 로프샨 나실리 씨는 이달 초 영문도 모른 채 국가안보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국가안보부는 올해 5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왜 아르메니아 대표에게 한 표를 던졌느냐”고 나실리 씨를 추궁했다. 유럽 전 지역에 생방송으로 진행된 이 노래경연대회는 시청자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선호하는 팀을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나실리 씨는 아제르바이잔 팀이 아니라 아르메니아 팀에 표를 던진 것. 나실리 말고도 42명이 같은 이유로 조사를 받았다고 영국 BBC방송 등 외신은 전했다.

나실리 씨는 국가안보부가 “민족적 자부심도 없는 너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며 압박했다고 털어놨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양국 접경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놓고 1990년대 초부터 무력충돌 등 국경분쟁을 이어오고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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