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현대판 기우?

  • 입력 2009년 7월 21일 02시 57분


피란 행렬17일 오후 중국 허난 성의 치 현에서 방사능이 누출됐다는 근거 없는 소문에 놀란 주민들이 앞다퉈 도시를 탈출하고 있다. 사진 출처 반다오왕
피란 행렬
17일 오후 중국 허난 성의 치 현에서 방사능이 누출됐다는 근거 없는 소문에 놀란 주민들이 앞다퉈 도시를 탈출하고 있다. 사진 출처 반다오왕
카이펑市‘방사능 누출’ 유언비어
순식간에 퍼져 수십만 탈출 소동

‘중국의 현대판 기우(杞憂)?’

기우란 ‘옛날 기(杞)나라에 살던 한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봐 침식을 전폐하고 걱정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쓸데없는 걱정’을 말한다. 최근 춘추시대 기나라가 있었던 곳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나머지 기우가 공포로 번지면서 주민 대부분이 탈출하는 현대판 엑소더스가 일어났다고 20일 중국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17일 오후 중국 허난(河南) 성 카이펑(開封) 시 치(杞) 현의 외곽도로엔 피란민을 방불케 하는 주민들로 가득 찼다. 버스와 자가용은 물론이고 경운기와 트랙터 트럭에 보따리 짐을 든 사람이 줄을 지었다. 오토바이에 리어카를 매달고 가재도구를 가득 싣고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현 소재지에서 방사능이 누출됐다는 소문을 듣고 탈출하는 사람들이었다. 인구 105만 명의 치 현 주민이 탈출하면서 카이펑은 물론이고 뤄양(洛陽), 정저우(鄭州) 등 인근 대도시에서도 극심한 교통 혼잡이 이어졌다.

대소동은 지난달 초 현 소재지의 한 공장에서 방사능 조사기(照射器)가 고장 나면서 시작됐다. 관계 당국은 방사능이 누출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고 서둘러 발표했다. 하지만 고추나 마늘 등 농산물에 방사능을 쪼여 부패를 방지하는 용도로 쓰이는 이 장비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국가환경보호부가 전문가들과 수리용 로봇을 파견했으나 17일 로봇을 원격조종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자 작업반은 이날 낮 철수했다.

작업반이 철수하자 ‘방사능 장비가 폭발해 방사능으로 로봇이 녹아내렸다. 관계자들이 긴급 철수했다. 방사능 누출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으로 부풀려졌다. 유언비어는 2시간 만에 인터넷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으로 삽시간에 현 전역으로 퍼졌다. 수많은 사람이 도로로 쏟아져 탈출에 나섰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목격자의 말을 인용해 현 주민의 80%가량이 대피했다고 전했다.

깜짝 놀란 현 정부가 라디오 TV 등 언론매체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해명하고 공무원과 경찰관이 거리로 나와 설득했지만 주민들은 믿지 않았다. 일부 주민은 “정부가 지난달 발생한 사고를 최근까지 감췄다”며 “정말로 안전하다면 방사능 장비를 가져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공안당국은 20일까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5명을 체포했다. 주민 상당수는 이제 안정을 되찾고 귀가했다. 현 정부는 이달 말까지 방사능 장비를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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