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케인 혼외정사 흑인딸’ 소문의 진실은…

  • 입력 2008년 9월 17일 19시 39분


"매케인이 혼외정사를 해 흑인 딸을 낳았다."

2000년 초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와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팽팽히 맞붙었던 미국 공화당 경선 당시 선거판은 출처불명의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특히 '매케인의 흑인 딸' 루머는 여론조사를 빙자한 전화와 팩스, e메일, 전단지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됐다. 결국 매케인 의원은 최대 승부처였던 2월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패배했다.

당시 루머의 소재가 된 매케인 의원의 '피부색 검은 딸'은 사실은 매케인 부부가 1991년 방글라데시에서 입양한 아이였다.

흑색선전에도 불구하고 매케인 의원은 브리짓을 포함한 자녀 7명을 정치행사장이나 언론에 거의 등장시키지 않아왔다. '가족은 정치에서 예외지대'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브리짓이란 이름의 그 딸은 지금 17세의 소녀가 됐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선 화려한 조명 아래에 섰다. 이달 초 공화당 전당대회 때 언니 오빠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소개된 것이다.

당시 방글라데시 북동부의 한 수녀원의 슈포르나(54) 수녀는 TV로 이 장면을 보며 놀라움과 반가움을 가누지 못했다. AFP통신과 방글라데시 현지 언론들은 최근 슈포르나 수녀를 인터뷰해 브리짓의 입양과정을 소개했다.

슈포르나 수녀는 매케인의 막내딸이 17년전 수도 다카의 '데레사 수녀의 집'에서 자신이 돌보던 갓난아기란 건 알고 있었지만 TV화면에선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브리짓은 당시 미혼모의 아기였는데 언청이로 태어났다. 아기 엄마는 미혼모가 아기를 낳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 전통 때문에 산전부터 이 시설에 머물며 아이를 낳았다.

몇 주 후 우연히 신디 매케인 여사가 방문했다. 신디 여사는 160여 명의 버려진 아기들을 보며 충격속에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 언청이가 심해 음식을 먹이기조차 힘든 한 여자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당시 동행했던 의사 빌 매케이브 씨는 AFP 인터뷰에서 "신디는 처음 브리짓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이 애는 내 아기야. 그냥 놔두면 죽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브리짓은 눈이 매우 예쁜 아기였다"고 말했다.

신디 여사는 브리짓과 심장결함을 안고 태어난 또 한명의 아기를 미국에 데려갔다. 심장결함을 안고 있던 아기는 매케인의 보좌관인 웨스 굴렛 씨가 입양했다.

피닉스 공항에 마중 나온 매케인 의원은 아내가 안고 온 아기를 보며 "어디로 가는 아기지?"라고 물었고 신디 여사는 "우리 집요"라고 대답했다. 브리짓은 그 후 4년간에 걸쳐 수차례의 수술로 언청이를 말끔히 고쳤다.

슈포르나 수녀는 "당시 입양되지 않았으면 아기는 고아원에서 계속 자랐을 것이다. 신체결함이 있으면 입양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몰라볼 만큼 잘 자란걸 보니 너무 반갑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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