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무언의 테러 ‘사이버 왕따’ 속앓이

  • 입력 2008년 7월 29일 03시 00분


“로웰고등학교에 다니는 리키입니다. 사전 읽기를 좋아하는 동성애자예요.”

미국 최대의 인맥구축 서비스(SNS·Social Network Service) 사이트인 ‘마이 스페이스’에 있는 리키(16) 군의 홈페이지에는 우스꽝스러운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올라 있다.

하지만 리키 군은 동성애자가 아니다. 사전 읽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더욱이 홈페이지를 만든 사실도 없다. 리키를 ‘놀림감’으로 만들기 위해 같은 학교 학생들이 만든 것이다.

커다란 덩치에 내성적인 리키는 유치원 시절부터 또래 아이들에게 ‘집단 따돌림(왕따)’을 당했다.

▽줄 잇는 사이버 왕따=13세 소년 할리건은 동성애자라고 놀리는 인터넷 메시지에 한 달 넘게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월에는 플로리다 주의 16세 소녀 5명이 자신들에 대한 비난 글을 인터넷에 올린 여학생을 집단 폭행하고 이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휴대전화와 인터넷, 디지털 카메라의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인터넷 공간에서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거짓 정보를 퍼뜨려 괴롭히는 ‘사이버 왕따(cyberbullying)’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미국 유에스에이투데이가 최근 보도했다.

사이버 왕따 문제가 단순히 인터넷에 글을 올리거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수준을 넘어 특정 사이트를 만들어 특정인의 신원은 물론 사진과 동영상까지 무차별적으로 올리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정신적 충격을 견디지 못한 사이버 왕따 피해자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따돌림자살(bullycides)’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뉴햄프셔대 아동 관련 범죄 연구센터에 따르면 2005년 조사대상 10∼17세 청소년의 9%가 ‘사이버 세계에서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00년 조사 때는 6%였다. 인터넷상에서 특정인을 따돌림하는 데 동참했다는 대답은 14%에서 28%로 두 배로 늘었다.

▽교사도 집단 따돌림 당해=청소년들이 사이버 왕따를 당하고도 주변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에서는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들도 피해자가 되고 있다. 캐나다뉴스와이어는 “캐나다교사연합(CTF)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20%가 사이버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교사를 알고 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미국과 캐나다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미국은 36개 주에서 ‘반(反)집단따돌림법’을 만들었고 미주리, 플로리다 주는 지난달 관련법 시행에 들어갔다. 캐나다도 교육부가 학교 당국과 학생, 학부모와 함께 사이버 왕따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일간 뉴스앤드옵서버는 “인터넷상의 따돌림 행위 중 어디까지를 불법적인 것으로 봐야 할지 대법원도 아직 기준을 정하지 못해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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