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영아]하루휴업 20일 전 예고한 ‘일본 파업문화’

  • 입력 2008년 6월 27일 03시 12분


통통하고 쫄깃한 면발로 유명한 사누키 우동은 일본 가가와(香川) 현의 명물이다. 최근 세계를 휩쓴 곡물가 상승은 영세한 우동가게들에도 가차 없이 영향을 미쳤다. 수입밀가루 가격이 1년 동안 3차례에 걸쳐 40% 이상 올랐다.

70대 노부부가 운영하는 이 지역 한 우동집의 사정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첫 번째 인상에는 종업원을 내보내고 부부가 가게를 운영하는 방법으로 대처했다.

그러나 5월 밀가루 가격이 한꺼번에 30% 오르자 한 그릇에 110엔이던 우동 가격을 20엔씩 올려야 했다. 그날 남편은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주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부인도 손님들 앞에서 “죄송하다”며 연방 고개를 숙였다.

싼 가격에 맛있는 우동을 판다는 자부심 하나로 50여 년을 일한 부부에게는 이런 상황이 무척 속상한 듯했다. 주인은 토핑을 얹어 150∼200엔대를 받던 메뉴의 가격은 손대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게 내 자존심”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유가 급등과 식량가 폭등으로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50년간 두부를 만든 70대 할아버지가 폐업을 결정하고는 “어차피 은퇴할 나이”라며 웃다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TV에 보였다.

이들 영세상인은 각자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 값을 올렸지만 너무도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25일 일본의 16개 어업단체는 다음 달 15일 하루 일제히 휴업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유가 급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정부의 정책 지원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업을 할수록 손해’라는 상황을 알리면서도 20일 전에 일찌감치 휴업을 예고하는 자세는 다분히 일본적이다.

일본 정부도 26일 즉각 중소기업과 어민 지원을 위한 보조금 확대 등 고유가 대책을 내놓았다. 어민들과 정부가 적어도 서로 존중하고 성의를 보이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유가와 식량가격 상승 등 외부에서 몰려온 거친 파고에 대한 일본인들의 대응에서 기자는 일종의 ‘선순환’을 볼 수 있었다. 생산자와 도·소매업자, 소비자들 사이에서 각자 충격을 줄여보려는 완충작용이 일어나 고통을 분담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모습이었다.

어려운 세계경제 현실을 도외시한 채 목소리를 높여 ‘네 탓’만 하거나 자신의 처지만을 강조하며 아래로 부담을 전가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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