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경제 ‘경박단소’ 부활한다

  • 입력 2008년 6월 3일 02시 54분


원자재값 폭등에 소비위축 여파 “더 가볍게, 더 얇게, 더 짧게, 더 작게”

더 가볍게, 더 얇게, 더 짧게, 더 작게….

일본 경제계에 ‘경박단소(輕薄短小)’ 바람이 거세다.

경박단소는 이미 1980년대 초반 일본의 제조업체를 휩쓸었던 유행이지만 최근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과 소비 위축의 여파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자동차업계다.

자동차업계 사정에 정통하지 않은 일반인에게 ‘일본=경차(輕車)강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는 일본 내수에 국한된 절반의 진실이었다.

일본자동차판매협회연합회와 경자동차협회연합회에 따르면 2007년 일본에서 팔린 승용차는 440만 대였다. 이 중 경차는 145만 대로 3대 중 1대꼴이었다.

차명별 판매순위를 보면 스즈키의 왜건R가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상위 10위 중 5개가 경차였다.

특히 34년간 일본 경차시장의 왕좌로 군림해 온 스즈키와 2006년 처음으로 대망의 1위에 오른 도요타 계열 다이하쓰의 뜨거운 선두 다툼은 일본 매스컴의 시선을 온통 사로잡고 있다. 과거 경차는 자동차 가격과 유지비가 싼 데 비해 실내가 좁고 힘이 없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업체들이 경쟁을 통해 개량을 거듭한 결과 요즘에는 ‘경차 거부감’이 거의 없어졌다는 게 일본 언론의 보도다.

하지만 수출로 눈을 돌리면 경차의 비중은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미약하다.

경제전문 주간지인 도요게이자이에 따르면 2007년 한 해 동안 일본에서 해외로 수출된 승용차 599만 대 가운데 경차는 1604대에 불과했다. 고작 0.03%의 비율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해외시장에서도 경차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 일본 자동차업체들의 각오다.

카를로스 곤 닛산자동차 사장은 지난달 13일 중기경영계획을 발표하면서 인도의 한 이륜차 회사와 제휴해 2011년까지 2500달러짜리(약 257만 원·세금 및 운송비 제외) 승용차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타타자동차가 올해 7월부터 생산할 예정인 ‘나노’에 비해서도 300달러나 싼 가격이다.

미쓰비시자동차는 전기로 움직이는 경차 ‘iMiEV’를 내년 일본 국내시장에 내놓은 뒤 가능한 한 빨리 유럽시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도요타자동차는 배기량은 1000cc로 경차(배기량 660cc 이하)보다 크지만 차체 길이는 경차보다도 짧은 초소형차 ‘iQ’를 내년부터 유럽시장에 수출할 예정이다.

iQ는 도요타의 첨단기술을 총동원해 의자를 최대한 얇게 만들고 각종 부품을 경량화해 연료소비효율이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프리우스’보다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 가전의 총아로 떠오른 평판TV 시장에서는 ‘박형(薄型)’보다 3배 이상 얇은 ‘초(超)박형’시대를 본격적으로 열려는 경쟁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두께 3.5cm짜리 초박형 ‘우(Wooo)UT’ 시리즈를 판매 중인 히타치는 내년에 1.9cm짜리 신제품을 발매할 예정이다.

샤프는 3.4cm 초박형 ‘아쿠오스X’ 시리즈의 후속 모델로 이르면 올해 안에 2cm짜리 제품을 내놓을 방침이다.

소니는 가장 얇은 부분의 두께가 3mm에 불과한 ‘유기 발광소자(EL) TV’를 판매하고 있다.

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열심인 유통업계에서도 ‘소(小)’가 화두로 등장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대형 소매업체들은 최근 도시지역에서 표준 점포에 비해 면적을 크게 줄인 ‘미니 점포’를 잇달아 선보일 예정이다.

생활용품 판매체인 도큐핸즈는 이달 중 홋카이도(北海道) 삿포로(札幌)에 매장 면적이 400∼1000m²로 기존 점포 규모(5000m²)의 10∼20%에 불과한 신형 점포를 개점한다. 도큐핸즈는 이와 비슷한 미니 점포를 앞으로 3년간 20여 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일본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은 점포 면적이 크게 줄어든 ‘테이크 아웃’ 전문점을 이르면 올여름부터 시험 운영한다.

세븐일레븐저팬은 면적을 4분의 1정도로 줄인 미니 편의점을 2년간 100곳 정도 개업하기로 했다. 슈퍼마켓 체인인 마루에쓰도 매장 면적을 700m² 이하로 압축한 점포를 5년간 50곳 정도 신설한다.

이 같은 현상은 유통업체들이 비용 증가를 가급적 억제하면서 도쿄(東京) 등 도심으로 몰리는 신규 고객을 붙잡으려는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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