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100년 기업’을 가다]<16>시계 제조 세이코

  • 입력 2008년 2월 22일 02시 55분


270개 부품 현미경 조립… “미다스의 손”

나가노현의 세이코엡손 공장, 고급브랜드만 생산

아날로그+디지털 ‘스프링 드라이브’로 재도약 꿈꿔

《일본 나가노(長野) 현의 중심부에 위치한 시오지리(鹽尻) 시의 세이코엡손 공장. 세이코 손목시계 가운데서도 ‘그랜드 세이코’ 등 고급 브랜드만을 생산하는 이 공장의 ‘직인(職人)공방’ 풍경은 여느 시계공장과 전혀 달랐다. 방문객이 큼지막한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공방 안과 밖은 철저하게 차단돼 있었다. 기능공들도 에어샤워 룸(압축공기로 먼지를 떨어내는 공간)을 통과한 뒤에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 기능공 손기술 ‘세계 정상급’

‘조립 공정’이라는 팻말이 보였지만 조립 라인처럼 생긴 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흰 가운을 입은 기능공들은 각자 독립된 책상 앞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미세한 부품을 조립하고 있었다. 공장이라기보다는 연구실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천장과 바닥에 뚫려 있는 수많은 구멍, 기능공들의 책상 앞에 놓인 대형 판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우에다 나오토(上田直人) 세이코엡손 손목시계사업부 주사는 “먼지가 부품에 흠집을 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람을 내뿜거나 먼지를 빨아들이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의 설명은 현미경으로 옮겨 갔다.

“그랜드 세이코는 일반 시계보다 5배가량 많은 270개의 부품을 사용한다. 고도의 정밀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현미경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조립이 불가능하다.”

그는 현미경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정밀한 작업을 하는 이곳 기능공들의 손기술 또한 ‘세계 정상급’이라고 덧붙였다. 이 공장은 1977∼1986년 개최된 세계기능올림픽 시계수리 부문에서 1977, 1979, 1981, 1983, 1985년 등 다섯 차례나 금메달 수상자를 배출했다.

○ 신제품 개발 ‘비밀의 방’

공장을 둘러보는 동안 유독 한 곳만은 짙은 커튼이 내려져 있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기능올림픽 금메달 수상자를 비롯해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 9명이 한 팀을 이뤄 일하는 ‘마이크로 아티스트(micro artist) 공방’이었다.

신제품 개발을 책임지는 이들에게는 한 가지 임무가 더 있다. 세이코워치가 2006년 8월 발매한 ‘크레도르 노드 스프링 드라이브 소너리’를 제조하는 일이다.

620여 개에 이르는 부품을 손으로 직접 만들거나 조립하기 때문에 연간 제조량은 5개에 불과하다. 가격은 개당 무려 1575만 엔(약 1억4000만 원).

‘크레도르…’가 스위스제 초고가 시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브먼트(시계를 작동시키는 핵심 장치)에 세이코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스프링 드라이브’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스프링 드라이브는 태엽시계의 아날로그적 우아함과 수정(水晶)시계의 정확성을 동시에 갖춘 일종의 ‘하이브리드 엔진’. 태엽에서 동력을 얻지만 수정의 진동과 첨단 집적회로(IC)로 정확도를 제어한다.

세이코가 야심작인 스프링 드라이브를 내놓은 배경에는 스위스 시계업체들과의 오랜 자존심 싸움이 깔려 있다.

○ 전통과 첨단의 조화로 승부수

스위스가 세계 시계시장을 석권하던 1969년 말 일본발 ‘빅뉴스’가 전 세계 시계업계를 강타했다. 세이코가 세계 최초의 수정 손목시계를 발매했다는 소식이었다. 개당 가격은 도요타 카롤라 자동차 1대 값보다 비싼 65만 엔.

서민층이 꿈도 꿀 수 없는 사치품으로 출발했지만 전자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수정시계를 순식간에 대중 소비품으로 바꾸어 놓았다.

정확성은 차치하고서도 가격 면에서도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 태엽시계는 급속히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1980년경까지 스위스 시계업체 1620곳 중 1050곳이 문을 닫았다.

세이코는 수정시계 덕분에 세계 정상을 밟았지만 자유경쟁시장에 영원한 승자는 없었다.

홍콩산 저가 수정시계의 등장, 거품 경기의 붕괴, 휴대전화 등의 등장에 따른 시계 수요 감소가 이어지면서 1990년대 세이코의 시계 매출은 급격한 하향 곡선을 그렸다.

반면 한때 고사 직전에 몰렸던 스위스 시계업체들은 고가의 구식 태엽시계를 앞세워 화려하게 부활했다.

스프링 드라이브는 이런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낀 세이코가 또 한 번의 뒤집기를 위해 준비해 온 회심의 승부수다.

스즈키 히로유키(鈴木廣之) 세이코워치 광고선전부 과장은 “스프링 드라이브는 장인(匠人)의 숙련된 손기술은 물론 고도의 IC 기술이 있어야만 생산할 수 있다”면서 “1969년 수정 손목시계를 실용화한 이후에도 더 좋은 시계를 만들기 위해 매진해 온 세이코 기술진의 땀과 열정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나가노=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세이코 그룹 개요
구분내용
창업연도1881년
손목시계
관련 회사
세이코홀딩스: 지주회사
세이코워치: 손목시계 판매·마케팅, 세이코홀딩스 산하
세이코엡손: 손목시계 등 제조, 1959년 독립
세이코인스툴: 손목시계 등 제조, 1937년 독립
연간 매출세이코홀딩스: 2091억 엔
세이코엡손: 1조4160억 엔(PC주변기 기 반도체 등 포함)
세이코인스툴: 2595억 엔
(전자부품 등 포함)
종업원 수세이코홀딩스: 7358명
세이코엡손: 9만5129명
세이코인스툴: 2708명
본사세이코홀딩스: 도쿄 도 미나토 구
세이코엡손: 나가노 현 스와 시
세이코인스툴: 지바 현 지바 시
홈페이지세이코워치: www.seiko-watch.co.jp
세이코엡손: www.epson.jp
세이코인스툴: www.sii.co.jp
연간 매출과 종업원 수는 연결재무제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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