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관련 사건의 재판을 담당할 별도의 재판부를 만들자는 주장이 처음 공개적으로 나온 건 지난해 5월 4일이었다. 당시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은 “지귀연 법원이 풀어주고 대법원이 인증하는 윤석열 내란 무죄 작전은 안 된다”며 ‘특별재판소’ 설치를 주장했다. 지귀연 재판부의 윤 전 대통령 구속 취소에 이어 대법원이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던 때였다. 이후로도 ‘조희대 대법원장을 믿을 수 없다’, ‘지 재판장에게 계속 재판을 맡길 수 없다’는 게 여당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하는 주된 이유였다.
그런데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내란재판부법의 내용은 민주당의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 법안의 핵심은 전담재판부를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느냐였다. 7월 민주당 의원들이 낸 법안, 12월 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수정된 법안에는 국회, 법무부 등 외부에서 재판부 추천에 관여하게 돼 있었다. 조 대법원장이 입김을 넣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명분에서다.
만들 이유 없는 ‘맹탕 법률’ 강행한 與
하지만 최종 법안은 법원 판사회의와 사무분담위원회에 재판부 구성을 맡기는 것으로 수정됐다. 입법부나 행정부가 재판부 선정에 개입하는 건 사법부 독립을 침해한다는 거센 비판에 여당이 두 손을 든 셈이다. 민주당에선 ‘이 법으로 조 대법원장의 재판 관여를 막았다’고 주장하지만, 법원이 통상적인 방식대로 무작위 배당을 하더라도 조 대법원장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는 점에서 별로 설득력이 없다.
또 다른 쟁점은 진행 중인 재판, 즉 지 재판장이 맡은 윤 전 대통령 내란 사건도 새로 구성하는 전담재판부에 넘길지였다. 원안은 전담재판부로 ‘이관한다’고 못 박았는데, 인위적으로 사건을 빼앗아 다른 재판부에 넘기는 건 사법권 침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법사위안은 ‘이송할 수 있다’로 바꿔 여지를 뒀고, 최종안에서는 넘기지 않는 것으로 정리됐다. 지 재판장의 구속 취소 결정이나 느슨한 재판 진행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재판부를 중간에 바꾸겠다는 발상은 애당초 무리였다.
결국 내란재판부 도입을 놓고 정치권과 법조계에 엄청난 논란만 벌어졌을 뿐 최종 결과물은 여당 시각에서 봐도 굳이 만들 이유가 없는 ‘맹탕 법률’이 됐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입법을 밀어붙인 건 지지층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정치적 셈법과 한 번 빼든 칼을 그냥 칼집에 넣을 수는 없다는 오기(傲氣) 때문으로 보인다. 논의를 거치면서 위헌성이 줄어든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내란재판부 설치를 법률로 정한 이상 앞으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공산이 크다.
‘정치는 재판 관여 말라’는 금기 깨져
법조계에선 법안의 세부적인 내용을 떠나 사실상 12·3 계엄 관련 사건만을 담당할 재판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등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 측에선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하겠다고 한다. 재판부가 헌법재판소에 제청할지,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와는 별개로 윤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재판 결과에 불복할 빌미는 주게 됐다.
더 우려되는 건 헌법이 아닌 법률로 특정 사건에 전담재판부를 도입한 사례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정치가 재판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금기가 깨진 것이다. 처음 선을 넘는 게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는 쉬운 법이다. 이번엔 별 실효성 없는 재판부를 구성하는 정도로 마무리됐지만 다음엔 어떤 무리한 입법이 이뤄질지 모를 일이다. ‘나쁜 선례’가 그래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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