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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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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이것 없이 집을 나설 수 없다’고 할 만한 생활필수품이 있다면 그게 뭐냐”는 질문을 받고 “그것은 단연 힐러리의 블랙베리”라고 대답했다.
별도의 장치 없이 무선통신이 가능하고 일정 관리와 e메일 체크 기능까지 있는 개인휴대 인터넷 기기인 블랙베리폰이 미국 정관계를 휩쓸고 있다.
실제로 유세장에서는 힐러리 후보가 틈틈이 손에 든 납작한 단말기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조작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오바마 원(1)’으로 불리는 유세 전용 비행기에서 내려 차에 타자마자 블랙베리를 꺼내 시카고의 선거 참모들이 보낸 e메일을 확인하곤 한다.
‘슈퍼 화요일’을 앞둔 2일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슈퍼볼 격전을 준비 중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쿼터백 톰 브래디와 블랙베리로 e메일을 주고받았다.
미국 외교관들도 대표적인 블랙베리 애용자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북핵 협상 파트너들과 만나는 도중에도 거의 1분 간격으로 주머니 속에서 단말기를 꺼내 뭔가를 계속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때로 심각한 표정을 짓곤 한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도 “국무부 주요 인사들의 손에는 예외 없이 블랙베리폰이 쥐어져 있다. 어느 순간부터 블랙베리가 미국 외교가를 장악한 ‘힘’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블랙베리를 통한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다 보니 현지에 나와 있는 공관의 기능이 축소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전 같으면 공관의 보고를 통해서나 알 수 있는 정보도 블랙베리를 통해 직접 연락이 가능해졌기 때문.
2003년 북미지역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해 유선인터넷 통신망이 완전 마비됐을 때도 블랙베리폰은 정상적으로 작동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1년 9·11테러 발생 직후엔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블랙베리폰을 사용해 정부 주요 당국자들에게 업무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