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가 힐러리 후원”

  • 입력 2007년 9월 13일 03시 02분


사기 혐의 도망자 신세로 15년 동안 멀쩡하게 기업 활동을 했고, 4년 전부터는 미국 대통령 후보에게 100만 달러 이상의 정치자금을 모아 주며 실력자 행세를 했다?

대통령 선거전이 달아오르고 있는 미국에서 힐러리 클린턴(사진) 상원의원에게 집중적으로 정치자금을 몰아 준 홍콩계 미국인 노먼 슈(56) 씨의 행각이 워싱턴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힐러리 의원의 선거캠프는 11일 “슈 씨가 연관된 것으로 확인된 선거자금 85만 달러를 반납한다”고 밝혔다. 그의 범죄 경력이 처음 공개됐던 8월 말 ‘그가 직접 준 2만3000달러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된다’는 반응과는 사뭇 달라졌다.

슈 씨는 1991년 캘리포니아에서 투자자금을 모집한 뒤 횡령한 혐의로 체포됐고, “유죄를 인정한다”고 밝힌 뒤 선고공판을 앞두고 잠적했다. 주 경찰은 그를 ‘도망자 명단’에 올려놓고 수배해 왔다.

자신을 패션사업가로 밝힌 그는 13년간의 ‘물밑 생활’을 청산하고 2004년 워싱턴 정치권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1990년대 중반 4년간은 홍콩에 머물기도 했다.

그는 2004년 이후 클린턴 부부를 위해 선거자금을 모았다. 이달 말에는 유명 음반기획자인 퀸시 존스 씨와 힐러리 의원을 위한 선거자금 모금 행사를 공동 주최한다는 계획도 잡혀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가 클린턴 부부를 노린 것은 또 다른 투자사업을 위해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그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주관한 행사에 1만5000달러씩을 내고 두 차례나 참석해 거물 기업인들과 사진을 찍었다.

수배 중인 그의 이 같은 대담한 행각은 지난달 한 캘리포니아 사업가의 신고로 마침표를 찍게 됐다. 그는 6일 캘리포니아 주에서 시카고로 가는 기차 안에서 체포됐다. CNN 방송은 “그가 신분 노출을 우려해 비행기 여행을 피했던 것 같다”고 보도했다.

그의 행각이 공개되면서 클린턴 캠프의 신중하지 못한 검증 과정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미국에서는 유료 신용검색을 통해 정치자금 제공자의 세금 및 소송 경력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캠프는 11일 “슈 씨의 중국어 이름인 ‘영유엔’을 검색어로 넣지 않는 바람에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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