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종언? 냉전 이전 시대로 회귀”

입력 2007-09-03 03:01수정 2009-09-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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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오콘 이론가 케이건 ‘역사의 귀환’ 기고서 주장

[1] 다극체제 아닌 美와 강대국 ‘一超多强’ 시대로

[2] 공산주의 붕괴되자 민주주의 대 독재체제 구도

[3] 이슬람 급진주의 부상으로 전통-근대 대립 여전

“역사의 종언이 아니라 역사의 귀환이다.”

1992년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저서 ‘역사의 종언’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탈(脫)냉전 시대의 세계 질서가 오히려 냉전 이전의 역사로 ‘회귀’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념 대립이 사라지고 자유무역 등에 힘입어 초국가적 평화체제가 도래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는 환상에 불과(꿈의 종언)할 뿐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로버트 케이건(사진) 미국 카네기재단 선임연구원. 네오콘(신보수주의) 논객으로서 2003년 세계 외교가를 발칵 뒤집어 놓은 책 ‘미국 vs 유럽 갈등에 관한 보고서’로 국내에도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가 발간하는 격월간지 ‘폴리시 리뷰’ 최신호에 ‘꿈의 종언, 역사의 귀환’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탈냉전 체제에 대해 통념을 뒤집는 해석을 제시했다.

▽하나의 슈퍼파워와 다수 강대국의 경쟁 시대=냉전 후 세계 질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일시적 일극(unipolar) 체제를 거쳐 다극 체제로 변화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었다.

지정학(geopolitics)보다는 지경학(geoeconomics)이 강조되면서 세계가 미국 유럽 인도 일본 중국 등 경제대국을 중심으로 다극화할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었다. 최근에는 이라크전쟁의 실패로 미국의 위상이 추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케이건 연구원은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는 오래 지속될 것으로 진단했다. 냉전에 억눌려 온 민족주의가 부활하면서 유럽연합(EU) 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 이란 등 강대국들이 등장해 초강대국 미국과 함께 ‘일초다강(一超多强)’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위상이 건재한 이유는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강대국들이 미국의 파워를 견제할 만한 대항 세력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U가 러시아나 중국과 손잡고 반미(反美)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은 낮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견제를 주도한다면 다른 나라들은 오히려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친미 성향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일본과 인도는 미국과 협력을 모색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케이건 연구원은 초강대국 미국의 존재가 강대국들 사이에 고조되는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미국의 리더십을 옹호하기도 했다.

▽여전한 이념전쟁, 민주주의 vs 독재체제=후쿠야마 교수는 냉전의 종식으로 모든 정치제도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로 진화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이런 예견은 틀렸다고 케이건 연구원은 지적했다.

탈냉전 체제에서도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보다 역사가 오래된 독재(autocracy)라는 적을 만나 여전히 힘겨운 이념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내에서조차 ‘반자유주의적(illiberal) 민주주의’보다는 ‘자유주의적 독재체제’가 낫다는 식의 비판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독재체제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절대적 가치를 부정한다. 강한 정부가 사회질서 유지에 유리하다거나 어리석은 군중에 권력을 주는 민주주의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중국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는 독재국가의 존재는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 실현을 동반할 것이라는 믿음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이들은 서구사회의 인도주의적 개입 정책을 부정하고 미얀마, 짐바브웨 등 독재 정권을 지원하고 있다.

케이건 연구원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민주국가와 독재국가가 대립하고 있어 북한과 이란 핵 문제 등 주요 현안의 해결이 어려운 상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아시아, 유럽의 민주국가들이 유엔이나 주요 8개국 회의(G8)를 보완하는 새로운 기구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사라지지 않은 전통주의, 모더니티(근대성)와 대립=케이건 연구원은 세계화와 근대화의 마지막 저항 세력으로서 전통주의적 이슬람 급진주의의 건재함도 탈냉전 시대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보았다.

이슬람 급진주의는 일종의 종교적 민족주의로서 신정통치(theocracy)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강대국에 맞먹는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진단이다.

신구 세력 간의 대결은 신기술과 신문명으로 무장한 신세력의 승리로 끝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전통 세력을 대변하는 이슬람 급진주의 그룹은 역설적이게도 근대화와 세계화 추세에 힘입어 첨단 무장세력으로 거듭 나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이 인터넷을 테러범들의 정신교육과 군사훈련의 장으로 활용하는 현실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알 카에다의 2인자인 알 자르카위는 “성전의 절반 이상이 미디어 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케이건 연구원은 나아가 전 세계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 이란 등 독재 국가와 맺고 있는 우호적 관계로 인해 테러범들이 핵무기를 손에 넣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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