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괴한 수십명 “버스 사막으로 돌려라”

  • 입력 2007년 7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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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분당구 샘물교회 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장세력에 납치된 것으로 확인된 20일 이 교회의 권혁수 사무총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성남=원대연 기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샘물교회 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장세력에 납치된 것으로 확인된 20일 이 교회의 권혁수 사무총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성남=원대연 기자
한국인 21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것으로 20일 확인되자 정부는 외교통상부에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관계부처 회의를 잇달아 여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정부는 한국인을 납치한 무장세력이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의 철수를 요구했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납치세력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아프간 정부도 사고 발생 직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피랍자 석방에 힘쓰고 있다.

정부는 피랍자의 안전 문제가 있기 때문에 명단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탈레반 수십 명이 버스 세워”=외신과 정부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19일 오후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남부 칸다하르 시로 가던 중 가즈니 주 카라바그 지역(카불 남쪽 175km)에서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알리 샤 아마자이 가즈니 주 경찰서장은 “19일 밤 풀려난 버스 운전사가 ‘탈레반 수십 명이 버스를 세운 뒤 사막으로 몰고 가도록 강요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이어 사막에서 버스를 버리고 탑승자 모두를 차에서 내려 1시간 정도 걷게 한 뒤 운전사만 마을 주민들에게 보내 줬다는 것.

제마리 바샤리 아프간 내무부 대변인은 “무장세력은 한국인들이 왜 칸다하르로 가려 했는지, 어떤 단체와 함께 움직였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현지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한국인들이 탈레반의 공격이 잦은 도로를 지나면서도 경찰에 통보하지 않았고 신변 보호도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 강후원 영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납치세력이 버스를 납치한 뒤 ‘왜 한국인이 많이 타고 있느냐’고 물은 것으로 알려져 한국인을 의도적으로 납치한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며 “가즈니 주 정부를 통해 무장세력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대응팀 21일 아프간 파견=정부는 납치 첩보를 입수한 직후 아프간 정부는 물론 아프간 현지에 병력을 파견한 미국 영국 프랑스 헝가리 네덜란드 등 10개국에 사실 파악 및 협조를 요청했다.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도 21일 아프간 현지에 파견키로 했으며 현지에 파병된 한국군 동의다산부대와도 긴밀하게 연락하고 있다.

정부는 또 피랍자 가운데 일부가 휴대전화 로밍을 했다는 정보를 입수해 이를 토대로 피랍자들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어떤 세력이 무슨 목적으로 납치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아프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레반 소탕 대테러 전쟁에 파병한 것이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AP통신은 이날 “탈레반이 21일 낮 12시까지 한국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지 않으면 인질을 처형할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전했다.

▽아프간 위험국가 지정될 듯=아프간은 ‘여행 유의-여행 자제-여행 제한-여행 금지’ 등 정부의 4단계 여행 경보 가운데 ‘여행 제한’ 지역으로 지정돼 가급적 여행을 삼가도록 하는 곳이다.

실제 외교부는 2월 ‘탈레반 무장세력이 아프간에서 한국인 납치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한국인들의 아프간 지역 내 이동을 한동안 금지하도록 요청하기도 했다.

그래서 주한 아프간대사관도 특정한 목적 없는 관광이나 일반 비자는 발급하지 않고 있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여행금지국은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여행에 나서는 사람들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는 것.

이달 말 여권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되면 이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개정안은 위험국가나 지역으로 지정된 장소에 허가 없이 방문하는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 법이 시행되면 여권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이라크와 소말리아 등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위험국가로 지정할 예정인데, 이번 피랍 사건으로 아프간도 여기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여권심의위를 만들어 위험국가나 지역을 선정하고 통보하는 절차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해 당장 다음 주부터 새 법이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외교부 관계자는 “서두른다고 해도 실제로 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10월경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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