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국립행정학교의 몰락?

  • 입력 2007년 7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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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출신 각료 1명뿐… 법률가들이 대신 자리 채워

프랑스에서 고위 공무원이 되려면 국립행정학교(ENA) 졸업장이 필수였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시절에는 12명의 장관 중 7명이 ‘에나르크(Enarque·ENA 졸업생)’였다. 시라크 전 대통령도 에나르크다.

그러나 ENA를 나오지 않은 니콜라 사르코지 씨가 대통령이 되면서 에나르크는 몰락했다. 현 정부 각료 16명 중 에나르크는 발레리 페크레스 고등교육장관 한 명뿐이다. 에나르크가 물러난 빈자리는 법률가들이 채우고 있다.

주간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법률가들이 프랑스 정부의 새로운 엘리트 집단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르코지 대통령부터 변호사 출신이다. 프랑수아 피용 총리도 법대를 나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재무장관은 미국계 로펌 출신이며, 장루이 보를루 환경장관은 기업 변호사, 라시다 다티 법무장관은 판사와 검사를 지냈다. 장관 16명 중 9명이 법률가다.

사회당 대선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 씨가 대통령이 됐다면 에나르크의 전성시대는 이어졌을 것이다. 루아얄 씨와 그의 동거남이자 사회당 당수인 프랑수아 올랑드 씨는 모두 에나르크다.

에나르크가 법률가들에게 밀려난 걸까. 프랑스의 석학이자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지낸 자크 아탈리 씨는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최고 엘리트인 에나르크가 정부보다 돈도 많고 영향력도 큰 민간 기업 쪽으로 몰려갔기 때문”이라며 “체면을 구긴 쪽은 에나르크가 아니라 정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아탈리 씨 역시 에나르크다.

프랑스 엘리트 그룹의 교체는 국정 개혁에 실보다는 득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에나르크 특유의 중앙 집중적이고 상명하달식 국정 운영 철학을 배우지 않은 법률가들이 관료주의 문화를 개혁하는 데 적임자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프랑스 정부의 ‘탈(脫)에나르크적’ 스타일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즐겨 쓰는 말에서도 읽을 수 있다. “나의 유일한 이데올로기는 실용주의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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