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의 영국’ 돛 올리다… 오늘 총리 취임

  • 입력 2007년 6월 27일 03시 00분


영국의 최장수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56·사진)이 27일 총리직에 오른다.

‘정치인 브라운’으로서는 언변 좋고 카리스마 넘치는 라이벌 토니 블레어 총리의 그늘에서 벗어나 13년간 염원해 온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언론들은 ‘영국이 대중적 정치인을 보내고 실무형 행정가를 총리로 맞게 됐다’고 보도했다.

브라운 신임 총리는 이날 오전 영국 여왕을 만난 뒤 재무장관 관저인 다우닝 11번가에서 총리 관저인 10번가로 옮겨 총리직을 수행하게 된다.

영국 노동당원들의 정치적 스승으로 꼽히는 앤서니 기든스(사회학) 런던정경대 교수는 26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영국 총리 교체의 의미를 “진지함으로의 회귀”라고 요약했다. ‘여러분은 날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난 블레어니까’에서 ‘여러분은 날 믿어도 좋다. 난 진지한 사람이니까’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AFP와 뉴욕타임스는 브라운 신임 총리가 전임자의 정책을 계승하면서도 국내외 문제에서는 좀 더 좌파 성향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라운 신임 총리는 24일 당수로 지명된 뒤 수락 연설에서 “강자가 약자를 도울 때 우리 모두가 강해진다”며 분배 정책을 강조할 것임을 암시했다.

블레어 총리가 견지했던 개입주의 외교 노선도 상당 부분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친미 성향의 정치인으로 분류되지만 이라크전쟁을 ‘실수’라고 평가하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는 분명하게 거리를 두는 자세다. 미국이 이란에 무력을 행사할 경우 브라운 신임 총리는 ‘파병도 비난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951년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브라운 신임총리는 에든버러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3년 32세의 나이로 하원 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신참 의원이던 블레어 총리와는 사무실을 함께 쓰며 오랜 동지이자 라이벌의 인연을 맺었다.

브라운과 블레어는 1994년 존 스미스 노동당 당수 사망 이후 본격적으로 당권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으나 ‘집권 2기 이후 당권과 총리직을 넘기겠다’는 블레어의 구두 약속을 받고 브라운은 2인자 자리로 물러앉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집권에 성공한 두 사람은 “영국 정치계의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기든스 교수)라는 찬사를 받으며 3기 연속 집권과 10년간의 장기 호황이라는 신화를 이뤄 냈다. 그러나 블레어의 집권 2기 이후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약속은 틀어졌다. 지난해 9월 정부 각료 8명이 블레어의 사임을 요구하며 사퇴했을 때 막후에서 ‘정치적 쿠데타’를 지휘한 주역으로 브라운이 지목되기도 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물러나는 블레어, 중동 특사로 ▼

다우닝 10번가에서 예루살렘 중동 특사로.

27일 물러나는 토니 블레어(54·사진) 영국 총리가 중동 평화 특사로 사실상 확정됐다고 AP통신과 영국 언론들이 26일 보도했다.

중동 평화 협상을 주도하는 유엔 유럽연합(EU) 미국 러시아 4자는 26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회의를 열어 블레어 총리를 특사로 공식 임명할 예정이다.

블레어 총리가 특사로 임명되면 예루살렘과 웨스트뱅크에 사무실을 두고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포함한 중동 지역의 안보와 경제 문제 등을 위해 일하게 된다. 지금 당장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평화 협상보다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에 대한 국제 제재를 철회하도록 국제 사회를 설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블레어 총리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회담 도중 스스로 중동 특사 제안을 했으며, 이후 미국과 유엔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추진됐다고 보도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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