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日 '칼리 피오리나' … 산요전기 회장 중도 하차

  • 입력 2007년 3월 20일 16시 39분


'일본판 칼리 피오리나'로 주목받던 산요(三洋)전기 노나카 도모요(52) 회장이 취임 1년 9개월 만에 전격 사임했다.

노나카 씨는 19일 오전 산요전기의 특별 이사회에서 최근 문제가 된 회계 스캔들을 조사하기 위해 외부인사를 영입해 조사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다른 이사들의 반대로 부결되자 사표를 제출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노나카 씨는 20여 년간 NHK 등에서 뉴스캐스터로 활동한 방송인 출신. 2005년 6월 창업자인 이우에 사토시(井植敏·75) 전 회장이 거액적자의 책임을 지고 퇴임하면서 그를 후임으로 지명해 일약 산요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등극했다.

일본인들은 그를 1999년 휴렛패커드(HP)의 여성 CEO로 등극한 칼리 피오리나에 비교했지만 2005년 이사회에 의해 '사실상 축출'된 피오리나와 마찬가지로 노나카 씨 역시 우울한 퇴장의 길을 걷게 됐다.

▽창업자와 금융기관과의 대립이 배경=노나카 씨 사임 이유를 회사 측은 '일신상의 이유'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그 배경에 창업자 집안과 그들의 영향력 배제를 노린 금융기관과의 격한 대립이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경영부진에 빠진 산요전기는 2006년 3월 미국의 골드만 삭스 등 3개 금융기관을 인수자로 해 3000억 엔을 증자받았다. 이들 금융기관으로부터 산요전기에 파견된 이사가 전체 9명 중 5명. 이들은 경영 실적 없이 창업자의 지명만으로 CEO로 취임한 노나카 씨에 애초부터 회의적이었다.

노나카 씨 사임으로 산요전기에 대한 금융기관 측 입김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게 일본 언론의 분석. 산요전기는 이미 반도체 사업 매각방침을 세웠지만 금융기관들은 여기 더해 디지털카메라나 휴대전화 등 채산성이 없는 분야의 매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노나카 씨를 후계자로 지명했던 이우에 전 회장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공사 불분명한 처신, 부진한 실적=노나카 씨 취임당시 창업자의 장남 도시마사(敏雅·44) 씨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세간에서는 그래서 이 '깜짝 인사'가 세습인사에서 관심을 돌리기 위한 '연출'이며 대외 이미지를 노린 인사라는 수군거림도 적지 않았다.

재임 중 노나카 씨는 이런 평가를 불식시키지는 못한 듯하다. 그는 경영재건보다는 '환경보전을 중시하는 산요'라는 브랜드 이미지 확립에 주력했다. 지명도를 살려 신제품 발표나 강연에 발 벗고 나섰지만 지난해와 올해, 휴대전화 배터리와 세탁건조기의 대규모 리콜이 발생하는 등 경영의 주름살은 늘어만 갔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인회계사인 남편이 경영하는 컨설팅 회사와 수억엔 규모의 컨설턴트 계약을 맺는 등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행동으로 비판을 샀다. 지난해 11월에는 회사가 부담하는 인도 출장에 남편을 동행한 것이 발각되기도 했다.

사내외의 역풍이 거센 가운데 나온 갑작스런 사임소식에 산요의 간부들 사이에서는 "그만 둘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빈정거림까지 나온다.

도쿄=서영아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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