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B출신 이바노프 부총리로 승진…푸틴, 후계자 저울질

  • 입력 2007년 2월 17일 03시 00분


러시아 대선 판도가 시소게임 양상으로 변했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가 실시되는 러시아에서는 지금까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3) 제1부총리가 선두를 달려 왔다. 그런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위 주자인 세르게이 이바노프(54) 전 국방장관에게 힘을 실어준 것. 이바노프 전 장관은 15일 제1부총리로 승진했다.

1년여 남은 대선에서 국민 지지율 80%를 웃도는 푸틴 대통령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푸틴 대통령이 후계자를 지명하는 순간 대선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푸틴 대통령은 이바노프 전 장관을 메드베데프 부총리와 같은 직급으로 올려놓아 대선 판도를 양강 구도로 바꿔 놓는 데서 일단 ‘손길’을 멈췄다.

이바노프 전 장관의 승진은 메드베데프 부총리가 크렘린 암투에서 밀리는 상황을 반영한다. 제복을 입은 국방과 안보 분야 공무원 집단인 ‘실로비키’의 힘도 이바노프 전 장관에게 쏠린다. 푸틴 대통령이 이바노프 전 장관을 부총리로 승진시킨 것은 퇴임 이후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한쪽으로의 쏠림 현상을 막으려는 의도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크렘린의 암투=지난해 11월 지지율이 한창 오르던 메드베데프 부총리는 본의 아니게 크렘린의 심기를 건드렸다.

푸틴 대통령과 같은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출신으로 러시아 제1의 기업 가스프롬 이사장을 겸임한 메드베데프 부총리는 푸틴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왔다. 크렘린은 가스프롬을 러시아 유일의 천연가스 수출 창구로 지정했고 가스프롬은 다른 회사를 집어삼키며 덩치를 키워 나갔다.

그런데 이 회사가 이고리 세친 크렘린 행정부실장이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로스네프티와 시베리아 유전을 놓고 다툼을 벌인 것.

두 회사의 유전 분쟁은 지난해 12월 포괄적 제휴 관계 체결로 막을 내렸다. 메드베데프 부총리와 세친 부실장의 암투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했다.

그렇지만 메드베데프 부총리는 이때부터 세친그룹의 역공을 받아 왔다는 것이 정치 분석가들의 관측이다. 역공은 경쟁자를 지원하는 우회도로를 타고 진행됐다. 이바노프 전 장관이 지난해 12월 러시아 최대 항공지주 회사인 통합항공사(UABC)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 이즈음.

이바노프 전 장관은 짧은 기간 항공회사를 운영하고서 15일 푸틴 대통령에게서 “지난해 기록적인 군수물자 수출을 달성했다”는 칭찬을 들었다.

▽실로비키의 파워=이바노프 전 장관이 푸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가안보위원회(KGB) 출신인 점도 대선에서 유리한 변수로 작용한다.

KGB 출신을 비롯한 실로비키 인사들은 그동안 메드베데프 부총리의 약진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며 세력 확대를 노려 왔다. 때마침 나온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 계획은 이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호재가 됐다. 이들은 러시아 안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이바노프 전 장관을 내세워 세력을 규합했다.

변호사 출신인 메드베데프 부총리는 이 세력에 맞서기 위해 지방을 갈 때마다 빈곤 해소와 같은 국가 프로젝트 사업을 풀어 놓으며 유권자들에게 직접 호소해 왔다. 이 때문에 이바노프 전 장관의 승진이 실제 유권자의 지지율 변화로까지 이어질지 아직은 확실치 않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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