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까지 죽이다니” 분노의 자폭

  • 입력 2006년 11월 25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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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이스라엘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몸에 검은 폭탄 띠를 두른 여성이 군부대에 접근했다. 이스라엘군이 이상한 낌새를 채고 섬광수류탄을 발사하며 막아섰다. 여성은 자폭했고, 군인 3명이 다쳤다.

보기엔 여느 자폭테러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자폭테러범은 올해 64세인 파티마 오마르 마무드 알 나자르. 아들 7명과 딸 2명을 둔 어머니, 가족이 35명인지 38명인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손자 손녀를 둔 대가족의 여성 가장이었다. 하마스는 테러 직후 그의 나이가 57세라고 밝혔지만, 유족은 64세의 할머니라고 말했다. 자폭테러로 오랜 세월을 보낸 팔레스타인이지만, 이렇게 나이 든 ‘할머니 테러범’은 없었다.

그의 운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손자 한 명은 이스라엘군과 대치하다 숨졌다. 또 다른 10대 손자는 총격으로 다리를 잃었다. 남편은 1년 전 이스라엘군의 감옥에서 사망했다. 아들 5명은 아버지가 갇혔던 바로 그 감옥에 아직도 수감돼 있다. 이스라엘군은 그의 집마저 날려 버렸다. 황혼기에 접어든 그가 폭탄을 짊어질 결심을 한 것은 이런 절망감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그의 딸은 “어머니는 3주 전 가자지구 모스크(이슬람 예배당) 집회에 참가하면서 순교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이스라엘군에 포위당해 모스크에 갇혀 있던 하마스 민병대원을 구출하기 위해 인간 방패를 자원하기도 했다.

결정적 계기는 8일 새벽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하눈 무차별 포격이었다. 어린이 7명을 포함해 19명이 희생됐다.

그런 개인사도 있지만 그를 자폭테러로 내몬 것은 여성의 희생을 이용해 충격요법을 써 온 하마스의 전술이기도 하다. 폭탄테러 직후 하마스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적들에게 ‘놀라운 충격’을 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밝혔다.

하마스가 자살폭탄 공격을 재개하는 와중에 중동 정세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종파 간 테러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내전 상황으로 악화됐다. 바그다드에서는 시아파 밀집 거주지인 사드르시티를 겨냥한 3건의 연쇄 차량폭탄과 2건의 박격포 공격으로 23일 하루에만 215명이 숨졌다. 부상자는 257명. 2003년 이라크전쟁이 시작된 뒤 종파 간 분쟁에 따른 피해 규모로는 가장 크다. 24일에도 폭탄이 터져 22명이 죽고 26명이 다쳤다. 시아파 민병조직은 곧바로 인근 수니파 거주 지역 모스크를 공격하며 맞섰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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