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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8월 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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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31일 카나 사태로 중동 방문 일정을 단축하면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휴전이 이번 주 성사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이번 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레바논 사태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과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이번 주 안보리의 결의를 통해 휴전 및 지속 가능한 분쟁 해결책에 대한 국제 사회의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은 카나 사태 직후 48시간 동안 레바논 남부지역 공습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지만, 당장 이튿날인 31일 레바논 남부 타이베 마을 등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다. 이스라엘은 지상군을 지원하기 위한 항공기 근접 사격은 48시간 휴전 발표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날 이스라엘은 어린이 37명을 포함해 60명에 가까운 민간인 인명 피해를 낸 카나 마을 폭격의 진상 조사를 이유로 48시간 정전(停戰)에 합의했다. 이스라엘은 ‘이 기간에 남부 레바논 주민들이 유엔과의 협력 하에 현지를 떠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미르 페레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48시간 정전’이 즉각적 휴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31일 의회에 출석해 “즉각적 휴전이 이뤄진다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힘을 만회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도 “헤즈볼라의 작전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며 목표를 이룰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경 자세를 늦추지 않았다.
앤 배너먼 유엔아동기금(UNICEF)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계속해서 민간인, 특히 어린이를 목표물로 삼는 것을 강하게 비난한다”고 밝혔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포도주의 땅’ 카나 ‘피의 땅’으로
지난달 30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어린아이 37명이 떼죽음을 당한 레바논의 카나는 예수가 이적(異蹟)을 행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 중 하나다.
성경 요한복음에 기록된 이적으로 ‘가나라는 곳에서 열린 결혼식 피로연 도중 포도주가 동이 나자 예수가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장소가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았다.
영국 BBC뉴스는 31일 “현대에 와서 카나는 물과 포도주가 아니라 피를 떠올리는 곳이 돼 버렸다”고 보도했다. 1996년에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민간인이 대거 숨지는 사태가 있었기 때문.
1996년 사태는 이스라엘과 아랍 진영 간 분쟁에서 최악의 사태로 꼽힌다. 당시 ‘분노의 포도’라는 작전명으로 레바논을 공격하던 이스라엘이 유엔 난민촌에 유산탄을 터뜨리는 바람에 난민촌에 있던 레바논인 100여 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부상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사고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엔은 조사를 벌인 뒤 “기술적이거나 절차상 실수인 것 같지 않다”며 이스라엘의 주장을 반박했다. 유엔은 당시 이스라엘의 헬기 2대가 카나 상공에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살던 레바논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제2의 카나 대학살’로 부르고 있다. 1996년에 남편과 자식을 잃은 파티마 발하스 씨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적들은 자비심도 인권도 민주주의도 모르는 놈들”이라고 비난했다.
카나가 이처럼 거듭 피해를 보는 것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카나는 이스라엘 국경과 멀지 않고 남부의 주요 도로 5개가 만나는 요충지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유엔, 미국 앞에만 서면…
레바논 사태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국제 평화 수호를 핵심 임무로 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무기력증이 심각하다.
레바논 사태가 발발한 지 3주 가까이 됐지만 안보리는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는 공식 성명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미국이 ‘남부 레바논에 있는 헤즈볼라 기지를 무력화하기 위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지난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레바논에 있던 유엔 감시단원 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안보리의 반응은 “이번 사건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는 성명에 그쳤다. 대(對)이스라엘 비난 성명은 채택하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긴급회의에서는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일찍부터 안보리가 전쟁행위 중단을 즉각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아직도 (안보리에서) 그 같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실망스럽다”고 개탄할 정도였다.
이날 안보리는 격론 끝에 “15개 안보리 이사국은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카나 마을 공격으로 ‘극심한 충격과 비통함’을 느낀다”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안보리는 이날 “무고한 생명의 희생에 대해 강하게 개탄한다. 항구적인 사태 해결을 위한 결의안 채택을 더는 지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레바논 사태와 관련해 그동안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사태 해결에 적극 관여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아난 총장이 요구해 온 ‘즉각적인 휴전’은 이날도 미국의 반대 때문에 성명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내용 역시 들어가지 않았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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